<장고:분노의 추적자> 노예제도에 대한 타란티노식 독한 농담

쿠엔틴 타란티노의 말대로 <장고: 분노의 추적자>(이하 <장고>)는 사랑이야기인가? 그렇다. 아내를 구하기 위한 한 남자의 눈물겨운 여정이라는 점에서 사랑이야기가 맞다. 하지만 타란티노는 사랑보다 복수에 더 흠뻑 취해있는 듯 보인다.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에게 일말의 용서 따위 허용치 않는 주인공은, 영락없는 복수의 화신이다. 기억해야 할 건, 이 복수극에 ‘역사’가 들어서 있다는 점이다. 처음은 아니다. 타란티노는 이미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역사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들을 다룬바 있다. <바스터즈: 거친녀석들>은 나치군에게 부모를 잃은 한 여자의 처절한 복수극이었다. <장고>에서도 복수의 대상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다. 영화가 배경으로 두고 있는 시공간은 백인우월주의가 하늘을 뚫을 기세였던 1850년대 미국 남부다. 흑인이 말을 타는 것 자체가 ‘진기명기쇼’처럼 여겨지던 시기, “오~ 장고, 오~ 장고~” BGM에 맞춰 등장하는 흑인노예 장고가 백인들을 어떻게 골탕 먹이는지, 지켜보지 않으면 아까울 걸.

노예생활을 전전하던 장고(제이미 폭스)는 독일인 현상금 사냥꾼 닥터 킹 슐츠(크리스토프 왈츠)의 도움으로 자유의 몸이 된다. 악질 무법자들을 죽이고 현상금을 받는 슐츠는 장고의 기막힌 사격솜씨를 알아채고, 그에게 함께 수배자들을 쫓자고 제안한다. 이때부터 영화는 버디무비 형식을 취하면서 중반을 향해 질주한다. 이심전심, 손발이 척척인 슐츠와 장고는 <리셀웨폰>의 멜 깁슨-대니 글로버만큼이나 인상적인 호흡을 보여준다. 영화의 무드가 바뀌는 건, 장고가 오래 전 헤어진 아내의 소식을 듣게 되면서부터다. 아내가 악덕 농장주 캔디 랜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노예로 있다는 소식을 들은 장고는 슐츠와 함께 캔디의 농장으로 향한다.

제목에서부터 <장고>는 1966년 개봉한 세르지오 코부치 감독의 마카로니 웨스턴 <장고>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름과 웨스턴의 뼈대만 취했을 뿐,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영화는 인종차별을 끌어왔다는 점에서 기존 웨스턴과 질감은 비슷하되 맛이 다르다. 물론 노예제도가 다뤘다고 해서, <장고>가 극사실주의 영화라 믿는 사람은 없을 거다. 적어도 타란티노를 안다면, 분명 그럴 것이다. 비디오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B급 영화들을 폭식했던 타란티노의 취향은 이번에도 영화 곳곳에 살아 꿈틀거린다. 황당무계한 유머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끼어들고, 흥건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며, 한껏 과잉된 인물들의 허풍이 사방에 떨어져 때굴때굴 구른다. 타란티노의 추종자들이라면 기꺼이 엄지를 치켜세울 게 분명이다. B급 영화광들이 70년대 블랙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쾌감에 젖는 것도 당연하다.

<장고>는 분명 기존 노예제도를 다룬 영화의 관습을 비트는 재미가 가득한 영화다. 하지만 그 방식이 유머러스할 뿐, 타란티노의 시선을 굉장히 차갑다. “나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미국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지 않았다. 유일한 반 인종차별주의자 백인(슐츠)을 미국인이 아닌 독일인으로 설정 한 것도 같은 맥락” 이라고 밝힌 타란티노의 말에서도 <장고>가 단순히 오락영화로만 소비되길 거부하는 작품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장고>는 타란티노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존 제도에 반기를 든, 독하고도 거친 농담이라고 보는 게 합당하다.

타란티노의 전매특허인 만담은 이번에도 핑퐁처럼 오고간다. 백인우월주의자 KKK단이 자신들의 상징인 흰 두건을 쓰고 ‘덤 앤 더머’식 대화를 이러가는 장면에서 타란티노 수다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수다가 가득한 영화인만큼 타란티노 영화에서는 액션 못지않게 언어를 잘 ‘털어내는’ 배우가 유리하다. 최초로 악역을 연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이 영화로 남우조연상을 노렸으나, 크리스토프 왈츠가 <바스터즈>에 이어 또 한 번 아카데미의 선택(그는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을 받은 건, 그가 ‘구강액션’에 능통한 배우이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조잘거리면서도 매력을 잃지 않는 그의 화술은 ‘말 많은 남자는 질색’이라는 일부의 편견을 깨뜨리기에 충분하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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