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트콤계의 ‘마에스트로(Maestro)’ 김병욱 PD의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하이킥>’)의 인기가 거짓말 조금 보태 지붕을 뚫을 기세다. 방영 전까지만 해도 <거침없이 하이킥>의 아류작에 머물지 않을까, 우려를 낳았던 <하이킥>이다. 하지만 괜한 기우였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하이킥>은 <거침없이 하이킥>이 개척 못한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날카로운 유머와 인간적인 페이소스를 길잡이 삼아 부단히 달렸다. 시청자들은 이러한 노력에 20%가 육박하는 시청률로 화답했다. <하이킥>은 그렇게 ‘형만한 아우도 있음’을 성공적으로 알렸다. 시트콤의 인기는 자연스럽게 등장인물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방귀순재(이순재)부터 ‘허당 보사마’ 주얼리정(정보석), ‘빵꾸똥구’ 해리(진지희), ‘떡실신’으로 천만 안티를 팬으로 돌린 황정음, 청순 글래머 신세경이 앞서가는 가운데, 꽃미남 준혁(윤시윤), 지훈(최다니엘) 등의 주변 인물들이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하며 극에 탄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캐릭터 진화에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대중의 사랑에서 역주행 중인 인물이 있다. 바로 김자옥이다. 이는 최근 모 포털사이트에서 실시한 ‘<하이킥>에서 가장 선호하는 캐릭터는?’ 이라는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그녀는 황정음의 애완견 ‘히릿’보다도 낮은 13위에 머물렀다. 극에서는 사랑 받아도, 대중의 사랑은 미지근한 현실. 김자옥이 외로워 보이는 이유다.
사건의 중심에서 밀려난 김자옥은 외롭다
<하이킥>의 김자옥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솔깃했다. 공주끼 충만한 그녀가 마음껏 놀 수 있는 판이 드디어 깔리는구나 싶었다. 시트콤이란 그녀에게 꼭 맞는 맞춤복 같아 보였다. 다만 걱정됐던 건, 기존 이미지의 재활용이 너무 ‘뻔’해 보이지 않을까란 점이었다. 하지만, 역시 김병욱 PD였다. 배우의 기존 이미지를 뒤 엎는 캐릭터 창출 신공을 지닌 그는, 익숙한 모습도 살짝 비트는 센스를 발휘했다. 그는 공주풍으로 대변되는 이 맞춤복에 ‘변태자옥’을 재단해 넣었다. ‘공주’와 ‘변태’라니. 구미 당기는 조합이었다. 그녀의 활약을 기대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것일까. ‘공주자옥’과 ‘변태자옥’의 공존은 좀처럼 시너지를 일으키지 못하더니, 결국 자옥 캐릭터는 ‘공주(라 하기엔 너무 현실적이고)’도 ‘변태(라 하기엔 너무 정상적인)’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중심 잃은 캐릭터 속에서 ‘난 대체 누구이고, 여긴 또 어딘가’로 헤매던 김자옥은 결국 자신의 기존 이미지를 동어반복 재생산 하고 있다. <하이킥> 속 김자옥은 예전 그녀가 맡았던 캐릭터들과 너무나 닮았다. 헤어스타일도, 의상스타일도, 심지어 하이톤의 음색처리마저도 비스무리하다. 망가지더라도 자존심은 잃지 않으려는 굳은 심지는 또 어떤가. 이 역시 기존에 보여 준 캐릭터 그대로다. 이쯤되면 헷갈린다. 이게 <하이킥>의 ‘교감자옥’인지,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 엄마인지’, <굳세어라 금순아>의 ‘금순이 시어머니’인지. 김자옥이 홍길동이었나? 아침에 삼순이, 점심에 금순이랑 있다가, 저녁에 순재 만나 물래 방앗간 데이트를 즐긴다고 해도 믿겠다. 초반, 계획했던 ‘변태자옥’은 도대체 어디로 갔나.

가해자의 위치에 선 김자옥은 외롭다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김자옥을 ‘가해자’로 그리고 있다는 점도 자옥 캐릭터에 적색경보를 울린다. <하이킥>이 기존 시트콤과 차별화 됐다는 평가를 받은 건, 이 시트콤이 우리 안에 있는 욕망과 비애, 부끄러움 등을 캐릭터 안에 응축시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며, '돈'이라는 괴물 앞에서 한없이 치졸해지는 우리네 인생사를 꾸밈없이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깊이 들여다보면, <하이킥> 속 인물들은 저마다 결핍과 콤플렉스를 안고 있다. 세경에게는 금전적인 결핍이, 정음에게는 학벌 콤플렉스가, 현경에게는 모성에 대한 결핍이, 심지어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해리마저도 애정 결핍에 시달린다. 요즘 유행하는 단어에 대입해 보면, 그들은 관계에 있어, 그리고 누군가의 기준에 있어 모두가 ‘루저’인 셈이다. 하지만 <하이킥>은 이들의 콤플렉스를 과장하고 희화화하기보다, 눈물을 통해 이겨나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인간적인 정을 느끼며, 몰입하고 포에버 아이러브를 외치게 된다. 이것이 <하이킥>의 인물들이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그만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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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애석하게도 이러한 장점이 김자옥에게는 수혈되지 못하고 있다. 극 중 김자옥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강자 혹은 가해자의 입장에 선다. 편견에 똘똘 뭉쳐 사람을 차별하는 것도 자옥이고, 방세를 올리기 위해 애꿎은 광수를 협박하는 것도 자옥이며, 학생들에게 까칠한 B사감처럼 구는 것도 자옥이다. 안다. 여기서 <하이킥>에서 타인을 괴롭히는 최대의 가해자는 ‘빵꾸똥꾸’ 해리라고 외치고 싶은 당신들의 마음을. 하지만 밉상스러운 해리와 자옥에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극 초반 개념 없는 캐릭터로 논란을 일으켰던 해리의 경우, 자기중심적인 부분이 거슬리긴 했어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소개되며 그 느낌을 상쇄시켰다. 하지만, 자옥에게는 해리에게 있는 인간적 아픔이 결여돼 있다. 웃음만 있고, 삶의 애환이 없는 캐릭터에게 시청자는 감정을 쉽게 이입할 수 없다. 애정 역시 호락호락 내어 주지 않는다. 하지만 <하이킥>은 60회를 넘긴 지금의 시점에서도 김자옥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부여하는데 인색하다. 지금 사람 차별 하나? 김자옥이 외로운 또 하나의 이유다.
자옥이 외로우니 순재도 외롭다
이러한 김자옥 캐릭터의 균열은 이순재라는 피해자도 낳았다. 현재, <하이킥>의 게시판은 ‘세경-지훈-준혁-정음’의 러브라인 향방에 대한 궁금증으로 도배 돼 있다. 아무개와 아무개가 천생연분이라 핏대 세우며 주장하는 글이 넘쳐난다. 너도나도 커플매니저에 마담뚜다. 여기에 언론도 가세했다. 네 사랑의 짝대기가 누구를 향할까를 예견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날그날 일어난 러브 에피소드 중계만으로도 기사거리가 되니, 좋단다. 아주 신났다. 이 와중에 이순재-김자옥의 러브 스토리는 춘풍에 돛 ‘거꾸로’ 단듯 연일 대중의 관심에서 미끄러져 가는 중이다. 이는 <거침없이 하이킥>때, ‘이순재-나문희’ 두 중년의 사랑이 포털 상위 순위에 오르고, 이슈를 낳았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당시 ‘이순재-나문희’의 활약은 중견 배우들이 젊은 배우의 주변인에 머물렀던 기존의 틀을 깨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한 청춘남녀의 사랑만이 정답이라 믿었던 방송가에 뜨끔한 일침을 가하는 사건이었다. 음침한 곳에서만 사랑을 논하던 중년들에게 메인스트림으로 뛰어나올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했다. 그런데, <하이킥>은 그게 왜 안 되는가! 순재와 자옥의 손발 오글거리는 신세대풍 이야기가 재미는 있되, 감동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감동은 왜 없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중 하나는 순재를 향한 자옥의 행동이 너무 ‘쏘 쿨’하기 때문이다. 괜히 드라마들이 출생의 비밀, 불치병, 삼각관계 등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관계가 극적일수록 애절해 보이는 게, 드라마의 기본적인 생리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이순재 짝사랑 무비인가. 순재는 자옥 때문에 쩔쩔매고 아파하는데, 자옥은 왜 이리 마음 편해 보이냔 말이다. 자옥과 순재의 사랑이 돋보이려면, 그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돼야 한다. 더불어 자옥에게 감정을 이입할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외로운 자옥에게도 해답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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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답이 보인다. 자옥을 외로움에서 구해 낼 방법이. 일단 제작진은 김자옥에게 그녀만의 확고한 이미지 메이킹을 해줘야 한다. 아니 요샌 백수에게도 ‘엣지’ 있는 삶을 위한 이미지 관리를 해 준다는데, 하물며 배우에게 안 해 주면 어떻게 하냐. 더불어 그녀 안의 슬픔을 터뜨려 줄 에피소드를 그려줘야 한다. 자옥이 왜 그 나이 먹도록 긴 밤 홀로이 지새우는지, 왜 하고 많은 곳 중에 엄한 젖꼭지를 꼬집는지, 왜 하숙생을 들이고 있는지, 왜 그 때 그랬고, 저 때 요랬는지. 그래야 순재와의 사랑도, 그녀의 얄미운 행동도, 시청자들에게 좀 더 애정 있게 다가갈 수 있다.
깊이 들여다보면, 김자옥은 활용 여부에 따라 <하이킥>의 조커가 될 수 있는 잠재력도 지녔다. ‘순재네 집’, ‘자옥네 하숙 집’, ‘학교’가 세 축을 이루며 전개되고 있는 <하이킥>에서 자옥은 모든 그룹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붙여 놔도 에피소드를 뽑아 낼 수 있는 장점이 그녀 안에 있다. 하지만 조커란 게 어떠한가. 패를 뽑아 들어야 기능을 할 수 있지, 묵혀두면 아무짝에 쓸모없는 게 또 조커다. 그런 면에서 김자옥은 현재, 자신을 철저히 이용해 줄 이를 기다리는 조커패다. 앞으로, <하이킥>에서 김자옥이 사람들과 조금 더 부딪히고, 그 때문에 아파하고, 상처 받고, 마음조이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비록 극중 자옥은 외롭겠지만, 그 외로움은 대중의 사랑으로 보답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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