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르모 슈팅> 로드무비의 거장, 길을 잃다 심야영화티켓


이 영화 참, 흥미롭다. 관람 전에는 <베를린 천사의 시> <파리 텍사스>로 유명한 빔 벤더스의 영화라는 점에서 흥미롭고, 관람 후에는 “정말 빔 벤더스의 작품 맞아?”라는 강한 의구심을 일으키기에 흥미롭다. <팔레르모 슈팅>은 빔 벤더스의 명백한 실패작이다. 제 62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분에 출품됐을 당시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는 소식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그렇다. 물론 거장도 오점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빔 벤더스에게 <팔레르모 슈팅>은 오점이 아니라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낙인처럼 보인다.

부와 명성을 겸비한 인기 포토크래퍼 핀(캄 피노). 남들이 보기엔 완벽해 보이는 삶이지만, 정작 핀 자신은 공허함에 허덕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하마터면 교통사고를 당할뻔한 위험한 순간을 경험하고, 이를 계기로 삶을 뒤돌아보게 된다. 마침 사진에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까지 들은 그는 진실된 사진을 찍기 위해 팔레르모로 향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이탈리아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남자로부터 계속되는 공격을 받게 되는데, 그가 죽음의 신(데니스 호퍼)임을 알게 되면서 그는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는 여러 부분에서 실망스럽다. 삶과 죽음, 예술에 대한 깊은 고뇌를 담아내겠다는 의도를 찾을 수 없어 실망스럽고, 삶이 공허하다는 주인공의 마음이 눈곱만치도 마음에 와 닿지 않아 실망스러우며, 작가주의 감독 특유의 지나친 자의식의 과잉이 배어나 실망스럽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화 마지막. 죽음의 신이 핀을 상대로 내 뱉는 진부하고도 일차원적이며 낯간지러운 교훈이 넘실대는 설교가 실망을 넘어 탄식을 자아내게 한다. 이렇듯 <팔레르모 슈팅>에는 주제에 대한 깊이가 빠졌고, 인물에 대한 공감이 빠졌고, 삶에 대한 성찰이 빠졌다.

빔 벤더스의 경향을 읽히게 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 ‘로드무비의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증명하듯, 그는 이번에도 길 위에서 방황하는 방랑자를 주인공을 내 세웠다. 음악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사실을 다시 알리겠다는 듯, 이번에도 닉 케이브, 벨벳 그라운드의 루 리드, 포티쉐 등 세계적 명성을 지닌 뮤지션들의 음악을 적극 끌어안았다. 문제는 이것들이 이 영화 안에서 딱히 기능적으로 사용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풍경을 담아 낼 사진기를 손에 든 핀이 팔레르모를 유유자적하게 거니는 모습은 한 편의 뮤직비디오로 보일 뿐이다. 그 속에서 인생에 대한 공허함을 느끼는 한 인간의 내면은 쉽사리 읽히지 않는다. 그것이 돈 많은 남자의 팔자 좋은 여행기로 보이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다.

영화가 끝나면 자막이 오르기 전 화면에는 “이 영화를 같은 날 세상을 떠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잉마르 베리만에게 바친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안토니오니와 베리만이 “심심하던 차에, 고맙다”며 영화를 틀었다가, 깜짝 놀라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로드무비의 거장 빔 벤더스는 <팔레르모 슈팅>으로 길을 잃었다. 진심으로 성능 좋은 내비게이션 하나를 택배로 붙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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