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PAPER 8월호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배우인데, 만나고 나서 더 흠뻑 빠지고 만... 흑.
<월간 PAPER> 정시우의 이달에 만난 사람
박희순, 한계점이 아닌 새로운 출발점을 향해 
<10억>이 저예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캐스팅이 화려해요.
섭외가 들어오기 전에 박해일한테 전화가 왔어요. 이런 시나리오가 있는데, 읽어보고 괜찮으면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봤는데 센 역할이고 악역이고 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감독님 만나서 작품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돌아와서 해일이한테 “너 진짜 하는 거야?” 확인 했죠(웃음). 또 당시 이민기가 물망에 올라 있었어요. 그래서 민기한테 “너 할거냐, 말거냐?” 했더니, “(사투리 억양으로) 형님 하는 거 봐서요~잉!” 하더라고요. (웃음) 그런 식으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마지막에 “그럼, 다 함께 하기로 하는 거다!”라고 결정을 내렸죠.(웃음)
<남극일기>때는 추위하고 싸우셨는데 이번에는 사막에서 더위와 싸우셨네요. 어떤 게 더 힘드셨나요?
두 개 다 힘든데 많이 비교가 됐죠. <남극일기>때는 1년에 겨울을 두 번 맞이했는데, 이번에는 여름을 두 번 맞게 됐고. 또 똑같이 오지였고. 흡사한 환경이었고. 그런데 다른 건, <남극일기>때는 남자 여섯 명 밖에 없었는데, 이번에는 미모의 여배우들이 있어서 심심치 않게 했어요.(웃음)
외부와 고립된 오지에서 거의 한 달을 갇혀 있었으니, 배우들끼리 많이 친해졌겠어요.
그렇죠. 한 달 동안 아침, 저녁 계속 봤으니까. 또 숙소가 리조트 비슷한 곳이었는데, 창문 열고 발코니 나가면 배우들 방이 다 다닥다닥 붙어 있었어요. 뭉쳐서 생활해야 했기 때문에 개인생활이 없었죠.
<10억>에서 후배들을 이끄는 입장이셨어요.
제가 이끌고 간다기보다, 우리의 학생회장 박해일씨가 있어서 저는 복학생 개념으로 임했어요(웃음). 해일이가 배우와 스텝간의 의견 조율을 잘 해 줬어요. 배우들의 건의 사항도 잘 수용해서 감독님께 논리정연하게 전달해 줬고요. 많이 의지가 됐어요. 저는 서포트만 했죠.
게임을 주도하는 장PD를 맡으셨는데, 이 캐릭터에 어떻게 접근하셨나요?
악역은 여러 번 했기 때문에 고심을 안 할 수 없었어요. <가족>이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이었고, <헨젤과 그레텔>이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표면으로 표출된 악역이었다면, 이번 같은 경우엔, 아내의 죽음이 저의 가장 큰 모티브였어요. 장PD라는 인물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지독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죠. ‘슬픔을 간직한 악역’이라고 컨셉을 잡고 갔어요.
<우리 집에 왜 왔니>에 이어 또 아내와 사별한 역을 맡으셨네요.
그러니까. 결혼도 못해보고 자꾸 아내가 죽어서, 참. (웃음)
박희순씨 대사처리는 뭐랄까, 참 맛있어요. 어떤 표현을 써야 하나 아무리 찾아봐도, 맛있다는 어감이 가장 잘 맞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배우의 본능일까요, 연습의 결과일까요?
제 삶이나 인생이 녹아 있는 거겠죠.(웃음) 평상시 말투나, 연극할 때 썼던 말투, 흘러간 시절에 썼던 말들이 나오는 거니까요. 특히 목화 시절 모셨던 오태석 선생님이 3.4조, 4.4조의 운율과 감칠맛 나는 구어체 대사를 굉장히 많이 활용 하시는 분이셨어요. 그런 목화 특유의 리듬을 체득한 게 많이 작용 하는 것 같아요.
배역을 맡았을 때, 캐릭터를 철저히 분석하는 편인가요?
네. 저는 철저하게 분석하는 쪽이에요. 이것도 목화 연극 할 때 몸에 밴 건데, 선생님이 저희에게 주는 대본엔 배역에 대한 상황 설명이 없었어요. “야, 여기서 고쳐야 될 거, 해야 할 거 얘기해 봐” 이런 식이셔서 캐릭터의 이력과 역사를 배우들이 직접 만들어서 해야 했죠. 무대 위해서도 선생님은 단서만 주시고 배우 스스로 만들어 가기를 요구하셨고요. 그게 버릇이 되니까 영화를 할 때도 제 의견을 많이 타진하게 되고, 감독님 생각을 많이 들으려 하게 되고 그래요.
한 장면에 대해서 여러 가지 안을 가지고 촬영에 임하는 걸로 유명하신데, 이것 역시 목화 때 훈련된 습성이군요.
그렇죠. 아무리 재미있는 장면도 3일 정도 연습하면 재미없어지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한 달, 두 달을 연습하니 오죽했겠어요. 관성에 젖은 연기를 하는 게 보이면 선생님이 어느 순간 가차 없이 잘라버려요.(웃음) 그래서 같은 씬이라도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가서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게 되는 거죠.
해묵은 질문일수도 있는데, 배경이 사막이니 생각나네요. 사막에 고립되는 상황을 맞게 됐을 때 꼭 가지고 가고 싶은 것 세 가지. 그리고 함께 하고 싶은 사람 두 명을 고르라면.
이거, 어려운데요? (웃음) 일단, ‘MP3’를 가지고 갈 것 같고요, 아줌마들이 쓰는 ‘선캡’도 하나. 그리고 ‘물통’이요.
되게 단출하시네요. 그럼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은?
음…… 아무나 괜찮은 거죠? 누구를 데리고 가지? 음…….
지금 부려먹을 수 있는 사람 찾고 계신 것 같아요(웃음).
맞아요.(웃음) 그러고 보니, 우리 매니저를 데리고 가야겠다~ 하하하. 그리고 아직 여자 친구가 없는데 생기면 여자 친구를 데리고 가고 싶어요.
전작 얘기를 좀 해 보죠. <세븐 데이즈>는 박희순씨가 인지도를 얻고, 상을 받았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박희순씨 본인이 갖고 있었으나, 보여 줄 기회가 없었던 발랄한 면을 마음껏 풀어낸 작품으로 보였거든요.
그렇죠. 대본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제가 기존에 보여드리지 못했던 면을 많이 펼칠 수 있는 캐릭터여서 더 마음에 들었어요. 연극 할 때 ‘비극을 희극처럼’, ‘희극을 비극처럼’, ‘급할 때 돌아가라’ 이런 얘기들을 많이 들었는데, 그게 <세븐 데이즈>의 성렬이라는 인물과 많이 맞아 떨어졌어요. 굉장히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지만, 저는 유머를 ‘툭’ 치면서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했어요. 또 정박으로 ‘딱!딱!딱!’ 가기 보다는 한 박자 빠르거나 느린 엇박의 리듬을 많이 살리려고 했고요. 목화시절 때처럼 영화에서도 즐기면서 놀 수 있는 장이 열리니까 너무 즐거웠어요.
<작전>의 조폭 황종구의 경우, 박희순씨만의 황종구가 탄생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 소화했다기보다, 완전히 흡수한 느낌이랄까. 원래 그렇게 웃기는 캐릭터였나요?
웃기는 건 거의 없었어요. <세븐 데이즈>도 마찬가지였지만 상황적인 것 보다 호흡과 템포로서 재미를 줄 수 있는 걸 많이 찾았어요. <작전>같은 경우는 액팅이나 반복적인 효과 내지는 틈새를 노린 애드립을 많이 쳤어요. 내가 돋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상황에 뭔가를 ‘톡톡’ 집어 넣어주면 극이 더 풍성해 지겠다 싶었거든요. 그리고 배우들끼리 워낙 친했기 때문에 내가 던지는 액션에 그 친구들의 리액션이 달라지고, 이 친구들의 대사에 또 내 리액션이 더 재미있어지고 그랬죠. 이런 시너지 효과가 탁월한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작전>은 외모에도 상당히 변화를 준 영화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일명 ‘올백’ 머리였죠.
목욕탕에서 머리를 감으면서 (올백 한 모습을 보고) “야~ 요거, 요고 참 못되게 생겼네, 요고! 이 스타일 언젠가 해 봐야지” 했는데, 이번에 써 먹었네요.(웃음)
<작전>을 통해 박용하, 김무열씨와 굉장히 친해진 걸로 알고 있어요. 연락 자주 하시나요?
그럼요. 요샌 서로 바빠서 자주 못 만나는데, 촬영할 때는 쉬는 날에도 봤던 것 같아요. 밤샘 작업하고 하루 쉬는 날이 주어지죠? 그럼 지칠 텐데도 어김없이 전화가 왔어요. “형, 술 마시자, 나와!”
김무열씨는 친해지기 위해 끊었던 담배까지 다시 피웠다고 하던데, 애연가 시죠? 인터뷰 사진들을 보면 담배를 든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돼요. 곳곳에서!
제가 낯가림이 있고, 뻘쭘한 걸 못 참거든요. 뻘쭘한 걸 제일 많이 쫓을 수 있는 게 담배인 것 같아요. (손에 든 담배를 흔들며) 이게 되게 의지가 돼서 담배 연기를 내 뿜으면서 하죠. (웃음)
하루에 얼마나 피우세요?
인터뷰 할 때 많이 피우는 것 같아요. 술 마실 때도 많이 피우고.
술도 자주 드시는 걸로 아는데.
그러니까 맨 날, 많이 피우는 거죠. 하하하.
(웃음) 술과 담배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면?
끊으면 두개를 같이 끊어야지, 하나만은 못 끊겠어요. 예전에 5, 6달 정도 끊은 적은 있어요. 뮤지컬 <그리스>랑, 연극 <비언소>를 같이 할 때였어요. 더블 캐스팅이었기 때문에 하루는 뮤지컬, 하루는 연극, 정말 정신없이 보냈죠. 그때 술, 담배를 하면 두 작품 모두에게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관리를 못해서 목이 가면 큰일 나잖아요. “한 작품이나 제대로 하지, 두개 해서 망쳤다”는 얘기 들을까봐 아예 둘 다 끊어버렸죠.
박희순씨 연기 중에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장면이 있어요. 왜 <우리 집에 왜 왔니>에서 아내가 죽어가는 걸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대신 딸꾹질을 하잖아요? 시나리오 그대로였나요?
제 아이디어였어요. 누군가가 죽은 충격 때문에 눈물을 펑펑 흘린다든지, ‘악’ 소리를 지르는 건 너무나 많이 보여 지는 모습이잖아요. 그래서 다른 방식이 뭐가 있을까 고민 했죠. 그 때 떠오른 게 딸꾹질이에요. 너무 놀라면 눈물이 나기보다 의외의 것들이 뛰쳐나오곤 하니까요. 말씀드렸더니 감독님도 좋다고 하셔서 그 장면에서 딸꾹질을 했죠.
<러브토크>나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우리 집에 왜 왔니>의 경우, 배출하지 못하고 안으로 삭히는 감정연기를 하셨어요. 충만 된 에너지를 강하게 배출하는 것도 능력이지만, 배우입장에서는 그 에너지를 조절하고 누르는 게 더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람들은 <세븐 데이즈>나 <작전> 때 힘들었겠다, 하시는데 <우리 집에 왜 왔니> 할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심적인 고통이 있지. 자살하러 다니며 겪는 육체적인 피폐함도 있지. 그 안에서 코미디 적이 요소도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또 발산하는 코미디가 아니라 최대한 누르면서 디테일하게 보여줘야 하는 코미디야. 이걸 모두 표현해야 해서 많이 힘들었어요. <나의 친구 그의 아내> 같은 경우에도 촬영 내내 감정을 최대한 누르면서 연기하려고 하니까 육체적으로도 편하지 않더라고요.
통닭 먹으면서 흐느끼는 씬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머리에서는 아프다고 하는데, 감정으로는 계속 누르고 있으려니까 미치겠는 거예요. 그 때 참고 연기 참다가, ‘컷’ 하는 순간 확 터졌어요. 30분 동안 대성통곡하면서 엉엉 엄청 울었어요. 내 생에 그렇게 운 건 또 처음인 것 같아요. 눈이 정말 ‘밤탱이’가 돼 가지고 얼음찜질하고.(웃음)
올해에만 벌써 <작전>, <우리 집에 왜 왔니>, <십억> 3편이 개봉하네요.
두 개는 작년에 찍은 작품이기 때문에 올해는 한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도 배고파요, 저는.(웃음)
시나리오는 선택은 보통 본인이 하나요, 소속사와 상의를 하나요?
최종 결정은 제가 하지만 상의를 많이 해요. 다행히 저희 대표가 대본 보는 눈이 있고, 저하고는 연극과 선후배 사이라 작품 토론이 가능하거든요. 저는 시나리오를 볼 때, 지금 하는 작품의 캐릭터와 다음 작품 캐릭터 사이의 간극을 많이 고려해요. 저번 작품에서는 A를 보여줬으면, 다음번엔 A가 아닌 B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기도 하고요. 물론 겹쳐진다 하더라도 작품 자체가 신선하면 선택하지만요.
아까 초반에 조폭 캐릭터를 많이 맡아서 고민하셨다고 하셨는데, 제가 보기엔 조폭 연기를 계속 맡는 게 문제가 아니라, 조폭을 연기하면서 항상 똑 같은 조폭의 모습만 보여주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렇죠.
그런 면에서 박희순씨는 놀라워요. <작전>에서의 조폭 황종구를 보면서 <가족>, <귀여워>, <보스상륙작전>에서의 조폭 연기가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같은 배역이라도 최대한 다르게 표현해 내려고 노력한 게 느껴져요. 변신에 대한 강박도 느껴지고요.
네. 저는 엄청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비슷한 모습이 나올 것 같으면 아예 선택을 안 하려고 하죠. 이 세상에 직업이 수만 가지가 있는데, 같은 직업을 세 번, 네 번 연기하면 나도 싫증이 나지만 보는 관객들도 싫증이 나잖아요. 같은 캐릭터라도 ‘어떻게 다른 모습을 보여 줄까’하는 플랜이 머릿속에 안 그려지면 그건 할 필요가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전> 때도 캐릭터를 연구하면서 여러 번 수정을 요구했고, 그 캐릭터에 스스로 확신이 설 때까지 도전을 찍지 않았어요.
<귀여워>때는 조폭 연기를 위해 실제 조폭들도 술을 마셨다고 들었어요.
감독님을 통해 소개 받고 (배우) 정재영이랑 함께 술자리를 가졌죠. 그들에게 뭔가를 배웠다기보다는 이 사람들의 평상시 모습이나 말투,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읽으려고 했어요. 다행히 그 친구들은 건달이지만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었어요.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자존심 하나로 먹고 사는 연극배우인 우리와,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지만 그러한 음지 속에서도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그네들의 모습이 어떻게 보면 되게 일맥상통하더라고요. 그런 모습에서 공통점을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고, 그걸 표현하려고 했죠.
목화 얘기는 안 여쭤 볼 수가 없네요. 12년을 있다가 나오셨어요. 나오기 전에 어떤 구상을 구체적으로 하고 나오신 건가요?
사실 처음엔 정말 막막했어요. 특히나 목화 배우들은 각계전투에요. 먼저 나간 선배가 끌어주거나 밀어주는 그런 게 없거든요. 우물 안에 있다가 우물 밖으로 툭 떨어져 나온 느낌이랄까. 내가 뭐를 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어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아트>라든지 <클로저>등의 연극과 뮤지컬을 접하면서 “아, 나한테도 화려한 게 어울릴 수 있구나”, “칙칙하고 어둡고 예술 쪽에만 어울리는 놈인 줄 알았는데, 이런 상업적인 곳도 내가 맞을 수가 있구나”를 느끼게 됐죠.
<세븐 데이즈>로 상을 받은 이후에 오태석 선생님과 연락은 하셨나요?
청룡영화상 끝나고 선생님이 음성 메시지를 보내셨더라고요. 핸드폰이 없으신데, 후배한테 폰을 빌려서요. 술 한 잔 드신 얼큰한 목소리로 “야~ 희순이 축하한다!” 하시는 거예요. “잘 했어! 우리들 지금 연습 하다가 너 수상하는 거 보고 박수치고 난리 났어! 잘 했어! 파이팅!” 이러시는데 막 눈물이 날 것 같았죠.
영화 현장에서 극단 후배들을 만날 때가 있죠? <우리 집에 왜 왔니> 때도 목화 배우분이 형사로 나오던데.
이도현!
네. 맞아요. 무대 위에서 호흡 맞추던 배우들을 카메라 앞에서 만나면 어떤가요?
하하하하. 너무 웃겨가지고 제가 NG를 차~암 많이 냈어요. 혀를 깨물어가며 웃음을 참았는데, 진지하게 연기하는 그 친구한테는 미안했죠. 그리고 <작전>때 내 부하로 나온 친구도 목화 후배였어요. 그 때도 엄청 웃었던 것 같아요. 제가 한번 웃음이 터지면 잘 참지 못하거든요. 엄청 반갑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셨나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만 했지, 이렇게 뻘줌한 놈이 진짜 배우가 될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막상 서울 예전이라는 곳을 가게 되니까 너무나 재미있는 거예요. 그렇게 소극적이고 소심하던 친구가 무대 위에서는 달라지더라고요. 또, 부득이하게 된 거긴 하지만 과대표도 하고, 동아리 회장도 하게 되면서 엄청 활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사람이 바뀌는 거예요. 고등학교 시절의 박희순과 대학교 시절의 박희순. 불과 1, 2년 인데 그 사이에 너무 다르게 바뀐 거죠. 저도 참 희한해요. 그 후에도 대학교 시절에서 연극 시절, 연극시절에서 또 뮤지컬 시절, 그 다음 영화시절, 각 단계별로 계속 변화를 겪었어요. 낯은 가리면서도 상황에 적응은 나름 잘 했던 것 같아요.
어떤 선배셨어요? 연극과 같은 경우는 위계질서가 엄격한데, 과대표까지 하셨으니.
뒤치다꺼리하는 과대표였죠! (웃음) 제가 앞장서서 “야야야!” 이랬으면 과대표를 안 시켰을 거예요. 그 때 복학생들이 많았는데, “애는 시키는 건 뭐든 잘 하겠다” 싶어서 뽑아 주신 것 같아요. 여자 동기들도 “얘가 숫기는 없지만 치우치지 않고 모두와 잘 어울리는 거 보니, 시켜먹으면 되겠다” 그러고. 위계질서 잡거나 후배들 가르치는 건 딴 친구들이 하고, 걔들이 때리고 해서 사건이 발생하면 그 땐 제가 수습하러 다니고 그랬어요. (웃음)
배우의 길이 내 길이 맞나 하는 고민의 시기도 있었겠지만, ‘이 길 밖에 없구나’란 확신이 들었던 시기도 있었을 것 같아요.
목화 나오기 3,4년 전, 선배들이 나가고 제가 주인공을 할 즈음이었어요. 그 때 갑자기 슬럼프가 왔어요. 팔팔 거리며 뛰어 놀았던 무대가 두렵고, 관객이 무섭고, 서 있는 것조차 힘들더라고요. 그렇게 된 계기까지 얘기하면 너무 길어지고~
듣고 싶은데요(웃음).
그러니까 그때까지 모든 연출이 오태석인 줄 알았던 거죠. 오태석 선생님하고 연극을 하다가 우리끼리만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작품을 가지고 뭔가 싸우고 만들어가고, 고쳐나가고 이런 것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었는데, 연출이 다르니까 안 받아들여지는 거예요. “이게 불편하고, 이건 이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니까 “불편하면 빼 줄게” 하면서 다 빼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역할은 갈수록 줄어들고. 오 선생님은 제가 작은 거 하나를 발견해서 가면 이걸 열개 백 개로 증폭 시켜주시는 분인데, 그 때는 제가 하나를 가지고 가면 가지고 있던 두개마저도 없어지는 거예요. 거기에 대한 공포가 무대 공포증으로 이어졌어요. 어쨌든, 그 공연은 어떻게, 어떻게 올리고 나서 다시 오 선생님과 작품을 하게 됐어요. 제가 주인공을 하기로 돼 있던 작품이었죠. 그런데, 선생님이 앞 작품에서 제가 버벅거리는 걸 보고는 주인공을 안 시켜주시는 거예요. 너무 화가 났죠. 나를 믿지 못하고 약속을 저 버린 선생님에게도 화가 났고,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고. 때려 칠 생각을 했죠. 그래서 선생님께 “좀 쉬고 오겠습니다” 하고 일주일을 쉬게 됐어요. 그런데, 아뿔싸. 이걸 때려치우고 자시고를 떠나서 7, 8년 연극만 하던 놈이다 보니, 갈 데가 없는 거예요, 갈 데가. (좌중폭소) 쉬면서도 이유 없이 대학로에 계속 나가게 되고~(웃음)
괜히 마로니에 공원 쪽에서 서성이게 되고 말이죠~(웃음)
하하하. 목화는 안 가고 계속 대학로 나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기는커녕, 나는 진짜 배우 밖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내가 낯이 두꺼워서 장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 있어서 가게를 차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오로지 이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뼈저리게 느꼈죠. 그래서 일주일도 채 안 되서 다시 돌아갔어요.(웃음)
가니까 선생님이 뭐래요?
“어~ 잘 왔어!” (좌중 폭소)
(웃음). 그 때 다른 연출과 하다가 무대 공포증이 생겼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목화를 나올 때, 거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새로운 연출을 만나야 했잖아요.
제가 처음엔 연출에 대한 욕심이 조금 있었어요. 작품을 내 것 중심으로 본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봤던 거죠. 그게 지금 배우 하면서는 큰 도움이 되지만, 당시에는 그 생각이 조금 과했던 것 같아요. 내 배역을 생각하면서 주제넘게 큰 것 까지 간섭을 했던 거예요. 그러다가 아까 말한 상황을 겪으면서, 그게 오태석이라는 큰 거목이 받아들일 때와 다른 연출가님이 받아들일 때, 엄청 큰 차이가 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뒤로는 연출은 깨끗하게 포기 하고, 배우로서의 선을 지키자고 다짐하게 됐어요. 전체를 보는 눈은 배우 박희순의 장점일 뿐이지 그걸 내세워서는 안 되겠다는 게 그 당시에 자리 잡은 거죠. 그래서 나가서는 다행히 같은 실수를 안 하게 되더라고요.
‘유명해지지 않으면서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 하셨더라고요. 존립하기 힘든 두 가지를 가지고 계시네요.
지금은 예전보다 제 스스로에게 많이 열린 것 같긴 해요. 그때는 알아보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괜히 모자 쓰고 다니고, 불편해 하고, 움츠려들고 그랬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알아보는 분들이 더 계신데, 그것에 대해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요. 또, 알아보시더라도 제가 아이돌이 아니기 때문에 “오빠~!” 이런 게 아니라 “어, 쟤는?” 이런 정도라(웃음). 또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제가 작품을 고를 수 있는 폭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알아봐 주시고, 사인해 달라고 하는 것 자체에 굉장히 감사드려요.
예능프로 <해피투게더>에 나왔을 때, 엄청 웃었어요. 표정이 왜 꼭 ‘난 대체 누군가, 여긴 또 어딘가’ 하는 표정이셨어요. (웃음)
하하하하. 너무 힘든 거예요, 그 좁은 목욕탕에 카메라가 10대가 꽉 차 있는데 어디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는 거예요. 웃는 것도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어색하고 힘들고, 제발 나한테 아무것도 안 물어 봐 줬으면 좋겠고(웃음). 청심환을 먹었는데도 진정이 안 되더라고요. 나중에 집에 가서 모니터를 했는데, 저도 처음 봤어요. 그렇게 못 견뎌하고 도망가고 싶어 하는 사람 표정은(웃음). 오죽했으면 <작전> 대표님께서 “희순씨 저런 거, 시키지 마. 안쓰러워서 못 보겠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영화 안 찍을 때는 뭐 하시나요?
별다른 취미가 없어요. 요즘엔 한강에서 운동 삼아 자전거 타고, 사람들 만나서 술 마시고.
음악 좋아하시나요?
네.
어떤 장르의 어떤 음악, 어느 뮤지션을 좋아하시는지.
음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하나에 파고드는 스타일이 아니라 잡식으로 다 들어요. 제 MP3 들어보면 옛날 뽕짝부터, 최신 음악까지 각종 장르가 다 있어요. <십억> 팀하고 호주에 있을 때도 애들이 “나 뭐,뭐 듣고 싶어” 하면, 제가 “어, 여기 있어!” 그러면, “오빠는 없는 게 없어!” 이러고. (웃음)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나요?
예전에 기타를 조금 쳤는데, 지금은 다 까먹었어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 작사, 작곡한 노래가 있다는 걸 얼핏 들었는데.
하하하하. 아니, 별걸 다 기억하시네.
작사한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가삿말이 있다면 하나 공개를 좀. (웃음)
으하하하하하. 고등학교 때 배웠는데, 음을 만들고 가사를 쓰는 게 그땐 재미있더라고요. 연극과 실기 시험 볼 때도 제가 작사 작곡한 노래를 불렀고요. 제가 쓴 가삿말이요? 에이~ 지금은 유치해서 도저히.(웃음)
박희순씨에 대한 전기 영화가 훗날 만들어진다면, 그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꼭 넣었으면 하는 음악이 있나요?
제 전기 영화는 만들면 안 돼요. 너무 재미가 없으니까(웃음). 개인적으로 장준환 감독님과 찍은 단편 <2001 이매진>(1996년 작품. 그는 이 영화에서 자신이 존 레논인 줄 착각하는 남자를 연기했다)을 좋아하는데, 거기에 나오는 ‘Imagine’이라는 음악을 쓰면 좋을 것 같아요.
<남극일기>에 ‘남극도달불능점’이 나오잖아요. 대원들은 그것을 깨려고 안간힘을 쓰고요. 그렇다면, 박희순씨에게 도달하기 위한 애쓰는 일명 ‘박희순도달불능점’이 있을까요?
아마 연기겠죠. 하면 할수록 힘든 거니까. 어느 순간부터인가 저에게 ‘재발견’이라는 말이 수식어처럼 따라 붙었는데, 처음 영화 쪽에 왔을 때는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보따리 풀 듯 하나씩 풀어내는 재미가 있었어요. “어! 이런 배우가 있어?”, “어? 얘가 이런 것도 하네?”라는 재미가요. 그런데 영화 생활도 10년이 다 돼 가다보니, 보여 줄 수 있는 게 점점 줄어들더라고요. 새로운 것을 보여 줘야 한다는 강박도 생기고요. 악역이라도 예전과 다른 악역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한국 배우들이 시도 안 했던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항상 도달불능점을 향해 가는 것 같아요. 이 머리와 이 감성 그리고 이 똑같은 신체에서 새로운 걸 개발해 내고, 생산해 내는 게 ‘박희순도달불능점’이겠죠.
아직 작업을 안 해 본 감독님 중에 함께 하고 싶은 분이 계신가요?
너무 많죠. 그런데 그 분들이 말로는 언급은 슬쩍슬쩍 하면서, 불러주질 않아요. 하하. 아무래도 제가 좀 더 커야 하나 봐요.(웃음)
배우 입장에서 좋은 연출이란 어떤 건가요?
내가 모르는 나의 새로운 면을 끄집어 내 주는 연출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로 뽑아내는 연출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어?’ 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감독은 정말 드문 것 같아요.
박희순씨의 작품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떤 사람이 우연히 박희순씨의 작품을 보게 됐다고 가정하면, 그 작품이 어떤 것이었으면 좋겠나요?
<우리 집에 왜 왔니>요. 가장 박희순스럽고 박희순의 여러 가지 면을 보여 줄 수 있는 게 <우리 집에 왜 왔니>예요. 직접적인 방법보다 에둘러서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저랑 비슷하고요. 여러모로 저를 가장 잘 대변하는 영화인 것 같아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영화이기도 하고요.
집에서는 어떤 아들이신가요?
신통치 않죠.(웃음) 그나마 요즘은 예전 연극 할 때 보다 잘 풀려나가고, 아들이 밖에 나가서 당신의 자랑거리가 되니까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어머니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제가 TV에 나오는 게 소원이셨거든요. 영화만 하니까 “TV 한 번만 나가지” 하셨는데 드라마를 한 번 했고, “너는 오락프로 그런 곳엔 안 나가?” 그러셨는데, 얼마 전 나갔고, “너는 왜 그렇게 상도 한 번 못 봤니~”라고 하셨는데, 받았고.(웃음) 매번 기도하시는 게 바뀌는데 요즘엔 “CF 하나 하면 좋겠다”고. (좌중 폭소) 신기하게도 어머니가 기도하시는 대로 하나씩 풀려가는 것 같아요. 그게 제가 해 줄 수 있는 최대의 효도가 아닌가 싶어요.
예전에 최민식씨 친구로 CF에 한 번 나오셨잖아요.
뒷모습만 나왔었죠. (웃음)
어쩌다가.
그 때 <가족> 찍을 때라 수염을 기르고 있었어요. 뒷모습을 보이다가 눈물을 그렁그렁 보이며 뒤돌아서는 게 본래 컨셉이었어요. 그런데, 광고주가 저를 보고 조폭같다며 자르라고 했대요.(웃음) 감독님이 저의 처진 뒷모습이 마음에 든다며, 그것만이라도 쓰자고 해서 나왔는데, 저에게는 고마운 일이었어요. 왜냐하면 돈은 똑같았거든요(웃음). 또 그게 그 해에 굉장히 이슈가 된 광고여서 재계약을 해서 부수입까지 얻었지 뭐예요.
특별히 찍고 싶은 광고가?
CF는 뭐든지 하고 싶어요. 하하하.
요즘 인간 박희순의 가장 큰 고민은?
차기작이 원래 6월에 들어가기로 했는데, 그게 밀려서 8월, 8월에서 또 밀려서 10월로 넘어갔어요. 들어갈 작품이 없다면 고민이 되겠는데, 일단은 있으니까 그게 최대의 고민은 아니고. 쉬는 동안 여자 친구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머니에게 기도를 한 번 부탁해 보세요.(좌중 폭소)
하하하. 그건 기도 빨이 먹힐까. 내가 좋아하는 <우리 집에 왜 왔니>의 대사처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건 정말 기적’인 것 같아요. 그 기적은 운명과도 같은 거니까, 언젠가 오겠죠.
극중에서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직접적으로 한 적이 별로 없어요. 실제 연애할 때도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는 편이신가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말을 잘 못해요. “사귀자!” 이렇게 당당하게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상대에서 먼저 사귀자고 했거나, 옆에서 막 몰아줘야 했죠.
혹시 지금도 마음에 있는 분이 계신데 말 못하고 계신 거 아니에요?
그게 어디 한 두 명이겠어요~(좌중 폭소) 저는 좋아하다가 저 혼자 말아요.
후회 안 되세요?
후회는 되죠. 그런데 고백했는데, 그쪽에서 “그냥 좋아하는 오빠에요. 그 이상은 아니에요”라고 하면 그 관계마저 이상해 질까봐, 못 해요. 평생 이러지 않을까 싶어요.
이상형이 어떻게 되시나요?
제가 친해지면 굉장히 밝고 명량한 부분을 보이는데, 대체적으로 다운돼 있을 때가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밝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에이~ 조금 식상한 대답 같아요.
대화나 유머가 통했으면 좋겠어요. 왜, 이런 거 있잖아요. 같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은 안 웃는데, 우리 둘은 서로 옆구리 찌르며 킥킥대게 되는. 그런 정도의 교감이 맞는 친구였으면 좋겠어요. 이건 식상하지 않나요?(웃음)
(웃음) 네! 이건 좋아요! 식상하지 않습니다. 평소 자주 만나는 친구들은?
엄태웅, 유해진 형……함께 작품 했던 친구들하고는 다 친하게 지내요. 이선균, 전혜진 하고는 삼총사였는데, 둘이 결혼한 후로는 가끔 만나고요.(웃음)
그러고 보니, 장준환 감독님, 문소리씨가 연애하는 걸 박희순씨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들었어요. 이번 이선균, 전혜진 커플도 그렇고. 어떻게 항상 중간에서~(웃음)
그러니까~ 왜 자꾸 나를 그런 쪽으로 써 먹어. (웃음)
며칠 전부터 ‘대한늬우스’ 부활 때문에 말이 많아요. 극장에서 박희순씨를 보려면 좋든 싫든, ‘대한늬우스’를 봐야한다는 의미인데, 배우 입장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어때요?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찾는 곳이 영화관이잖아요. 그런 공간에서 자꾸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가 강요된다는 게 가슴 아프죠. 쌍팔년도 새마을 운동도 아니고, 아직도 그런 계몽적인 걸로 사람들 마음을 좌지우지 하려는 게 안타깝고요. 어떠한 메시지든 그게 문화와 예술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갔을 때, 의미가 생기는 거잖아요. 배우들이 사회적인 이슈에 앞장서는 것도, 메시지가 있는 작품 앞에서 묵묵히 자기소임을 다할 때 생기는 거고요. 그 소임을 다하는 신성한 공간이 지켜졌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중 그는 ‘박희순도달불능점’을 향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박희순은 이미 여러 번의 ‘도달불능점’을 넘겨왔다. 소심한 소년에서 천의 얼굴을 지닌 무대 위의 배우로, 그리고 또 다시 영화라는 세계로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며 통과 해 왔다. 즉 그에게 ‘도달불능점’이란 한계지점이 아니라, 그의 연기 인생이 계속 되는 한 결코 마르지 않을 새로운 출발점인 셈이다. 새로운 ‘도달불능점’에 서 있을 그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해 본다.
글 - 정시우<bluekpm@hanmail.net> 사진 - 이제원 <fina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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