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와 매니저, 이별하는 중입니까 극장전劇場前


동상이몽Ⅰ- 나는 중견 연예매니지먼트 대표다
“개나 소나 아무나 하는 게 매니지먼트는 아니다”

최근,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다. “형을 떠나 혼자의 길을 가고 싶다”는 그 녀석 한마디에 3년 만에 라이터를 켰다. 뭐라도 부여잡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찾은 게 고작 담배라니. 내 팔자에 무슨 금연인가 싶다. 그 녀석. 아니, 그 녀석이라고 하기엔 이제 너무나 커버린 톱스타 K. 나를 떠나 1인 매니지먼트를 차리겠다는 K의 고백은, 계약 만료 불과 하루를 남기고 전해졌다. 안심하고 있다가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평생 형 동생 하며 함께 걷자던 K와 나의 관계는 5년을 넘기지 못하고 그렇게 끝났다.

처음 K를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당시 K는 데뷔 2년차 배우였다. 동화 같은 얼굴에 시원하게 뻗은 팔다리, 신인치고 탄탄한 연기력. 모든 게 완벽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에게 1%의 뭔가가 부족하다고 했다. 나는 그 1%를 매니징의 부재로 봤다. 제대로 된 관리만 받으면 배우로서의 앞날이 탄탄할 거란 예감이 스쳤다. 그에게 내 모든 걸 배팅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K를 데리고 와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나의 철저한 기획력 아래 K는 1년 만에 스타가 됐다. 충무로의 시나리오 대부분이 K를 거쳤다. 광고주들이, 감독이, 투자자가 K를 찾았다. 마침 주위 여건도 좋았다. 한국영화의 붐을 타고 연예산업이 만개했다. 돈 자루를 쥔 투자자들의 투자 기준은 스타였다. 투자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제작사와 방송국은 인기 있는 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웠다. 혀가 짧든 ‘발연기’를 하든 인기만 있으면 상관없었다. 스타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가 권력인 시대였기에, 매니지먼트사들은 스타를 영입하기 위해 블록버스터급 ‘스타워즈’를 벌였다. 스타의 개런티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았다. K와 함께 내 회사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나갔다. 나를 믿고 따르던 녀석이 스타로 성장하는 걸 보면서 매니저로서 큰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호시절은 일찍 막을 내렸다. 우리가 믿었던 성공은 사상누각이었다. 거품이었다. 신기루였다. 한국영화 시장이 위축되자, 투자자들은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아 뒤도 안 돌아보고 영화판을 떠났다. 제작편수 감소와 함께 스타들의 일자리도 줄기 시작했다. 그들이 방바닥을 긁는 동안 매니지먼트의 수익이 막혔다. 스타에게 투자되는 돈은 그대로인데, 회사에 들어오는 돈이 급격하게 줄자, 수지타산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매니지먼트들의 사정은 밑도끝도 없이 추락했다. 우리가 수십억 원에 이르는 계약금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일부 스타들은 개런티를 자진 삭감하거나, 계약금을 낮추는 방법으로 살길을 찾았다. 그리고 바로 이들, 1인 매니지먼트사 건립이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 하는 배우들이 생겼다. 계약금이 사라진 마당에 굳이 매니지먼트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톱스타들 사이에서 홀로서기가 유행가 가사처럼 퍼졌다. 최근 연예계 FA시장에 나온 한류스타 송승헌, 소지섭, 이준기가 독자적인 행보를 선택했다. 권상우, 윤은혜, 김명민, 김희선, 김정은, 김태희 역시 1인 매니지먼트 기류에 동참한 모양이다. 그리고 K. 그 역시 결국 혼자만의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인 K의 독립 소식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자 여기저기에서 전화가 빗발쳤다. 지인들은 회사가 어려울 때 나가는 K를 욕 했다. “의리를 엿 바꿔 먹었다”며 흥분했다. 위로랍시고 “분칠한 배우 믿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냐”며 설교하는 사람도 있다. 이거야 원, 쪽팔려서. 내 꼬라지가 불쌍해서 담배 한 개비를 더 물었다.

소속사가 자기만을 바라봐 주길 바라는 마음 역시, 스타들의 1인 시스템을 부추겼다. K도 떠나면서 말했다. 자신의 늘어나는 욕구를 내가 충족시켜주지 못했다고. 톱스타를 감당하기에 지금 매니지먼트사들의 기획력과 전문성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그렇게 비수를 꽂았다. 간혹 비효율성을 비난하는 스타도 있다. “소속사 대표 경조사에 왜 내가 불려나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방송에서 하소연 하는 경우가 그 예다. 진짜로 억울해서 그랬는지, 방송에서 웃자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연예인도 엄연히 한 회사에 소속된 사람이다. 회사 동료의 좋은 일, 궂은 일에 찾아가는 건, 사람으로서의 예의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이용당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할 말이 없어진다.
사실 매니지먼트사들이 배우들의 1인 시스템을 견제하는 건, 비단 ‘키워났더니 나가네’ 식의 의리문제 때문은 아니다. 그들이 스타파워를 내세워 우리를 위협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을 영입해 스스로가 수장이 된 1세대 스타들이(배용준, 장동건, 이병헌 등) 그 예다. 우리 입장에서 그네들의 행보는 엄연한 영역 침범이다. 특히 친분을 이용해 좋은 배우들을 모두 빼 가면, 우리 같은 작은 매니지먼트사의 입지는 좁아 질 수밖에 없다. 아마, 1인 매니지먼트를 선언하는 배우들 중 많은 사람이 배용준을, 장동건을, 이병헌을 벤치마킹하려 할 거다. 하지만 누구나가 배용준이나 장동건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매니지먼트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하면 실수다. 예전처럼 가방끈 짧은 어깨 형님들이 매니저를 한다고 보면 오산이다. 지금의 연예사업은 굉장히 전문화되고 체계화됐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게 바로 이 세계다. 1인 매니지먼트가 대세라는 이유로 함부로 도전했다가는 배우 생활마저 흔들릴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동상이몽Ⅱ - 나는 톱 배우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리”

“형을 떠나 혼자의 길을 가고 싶다.” 형에게, 아니, 나의 옛 매니저에게 말했다. 이 한마디가 쉽게 떨어지지 않아 술을 입에 댔다. 멋진 근육을 위한다면, 술은 입 근처에도 가져가지 말라는 전담 트레이너의 조언을 3년 만에 깨고 마신 술이다. 떠나겠다는 내 결정에 형은 놀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이 사람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아니, 서운한 감정을 쏟아내는 나를 붙잡지 못했을 거다. 처음 형을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나는 어느 정도 장래가 촉망받는 배우였고, 형은 가진 게 없는 매니저였다. 그래도 의욕 넘치는 모습이 좋아, 계약금도 없이 형과 일을 시작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잠을 반납하고, 연애를 접고, 다른 배우들이 꺼리는 배역에도 과감하게 도전했다. 그 사이 내 개런티가 급등했다. 회사는 돈을 벌었다. 새로 영입한 신인배우를 내 캐스팅 조건으로 끼워 넣었다. 회사는 그만큼 돈을 벌었다. 내 상대역을 맡게 된 신인 배우가 스타가 됐다. 회사는 또 돈을 벌었다. 아무것도 없었던 작은 회사가 나로 인해 성장해 가는 게 기분 좋았다.
이제 나는 톱스타다. 걸어 다니는 기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뜨면 팬들이 뜨고, 기자가 뜨고, 방송 시청률이 뜨고, 뉴스가 뜬다. 그리고 지금은 덜하지만 예전에는 주가도 떴다. 3년 전으로 기억한다. 내가 소속사와 결별한다는 ‘카더라’ 루머에 코스닥 시장의 엔터테인먼트 업종 주가가 요동쳤다. 한 매니지먼트는 나와 접촉했다는 소문 하나로 주가가 폭등했다. 위약금 이상의 몸값을 제시하며 다가오는 곳이 있었다. 수익배분을 요구하지 않겠다며 유혹하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의리를 지키려 소속사에 남았다. 나중에 후회할지 모르니, 정에 이끌리지 말라는 동료들의 충고가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그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근래, 경기 불황 여파로 매니지먼트들의 집안 살림이 꽁꽁 얼어붙었다. 형과의 계약 만료를 앞두고, 몇몇 매니지먼트 대표와 접촉했다. 그런데 조건들이 터무니없었다. 3년 전 제시 받았던 계약금의 반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다들 어렵다고 하니까, 계약금은 어느 정도 양보하자 싶었다. 그런데, 수익률 배분에도 7대 3 이상 요구했다. 보통 톱스타들의 수익 배분은 9대 1 이나 8대 2에서 책정된다. 7대 3이면 나로서는 큰 부담이다. 여기에 스타일리스트와 코디네이터 월급은 물론 식대와 차량 유지비, 미용비, 교육비, 의상비 등의 운영비마저 공동 부담으로 하자는 곳도 있었다. 이 정도면 협상의 의미가 없다. 1인 매니지먼트를 선택하는 배우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형에 대한 서운함 역시, 3년 전 선택을 재고하게 했다. 그리고 독립하는데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회사가 커 나가면서 형은 외부 사업에 열을 올렸다. 나에게 다른 매니저를 붙여놓고, 여러 가지 영역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나갔다. 해외 촬영을 다녀 온 사이, 신인 배우가 들어 와 있었다. 지방 촬영을 다녀온 사이 또 한 명이 들어와 있었다. 그런 식으로 소속사 배우들이 늘어갔다. 식구들이 많아질수록 나에 대한 관심은 눈에 띄게 줄었다. 나를 비롯한 스타들이 소속사에 갖는 불만 중 하나가 바로 이거다. 신인들의 육성과 발굴에는 그렇게 체계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매니지먼트들이, 소위 ‘뜬’ 스타들에게는 그러지 않는다는 거다.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건 스타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밀려드는 스케줄 제의와 책상위에 쌓이는 시나리오들. 아, 생각만 해도 힘이 빠진다. 내가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외적인 것은 알아서 관리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아진다. 나에게 집중 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목마름은 회사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
스타들이 1인 매니지먼트를 선택하는 큰 이유가 돈에 있기는 하다. 하지만 돈 때문만은 아니다. 돈 못지않은 이유들도 우리에겐 많다. 인간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기존 소속사에서는 하기 싫은 작품에 출연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하지만 1인 시스템 안에서는 내 특성에 맞는 작품을 자유롭게 선택 할 수 있다. 소속사와 갈등을 빚어 법적 분쟁에 휘말릴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큰 곳으로 이적할라치면 받아야 했던 “뜨더니 변했네”라는 시선과도 안녕을 고할 수 있는 게 1인 매니지먼트이기도 하다. 기업인이나 정치인의 행사에 불려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도 참 마음에 든다. 얼마 전, 전두환 전 대통령의 팔순연에 동원됐다가 개념 없다고 뭇매를 맞은 SS501의 김현중을 생각하면 같은 연예인으로서 간담이 서늘하다. 배우인지, 재롱꾼인지 정체성에 혼란을 겪어야 했던, 슬프기 그지없는 순간들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그런 고민 던지고 말 그대로 ‘엔터테이너’. 즐기면서 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1인 매니지먼트는 연예인 개개인, 즉 사람 중심의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고질적으로 반복 돼 온 불평등 계약 관행을 개선해 줄 모델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故 장자연 사건이나, 전지현 휴대폰 복제 사건 모두 연예인을 사람이 아닌, 소속사의 부속품쯤으로 봤기에 일어난 일이다. 두 사건 이후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의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고는 하지만 노예계약, 성 상납, 비인간적인 갈취 등은 아직도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끝나지 않은 비극이다. 사람이 시스템 위에 서야만 철폐될 수 있는 견고한 성이기도 하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우리의 독립에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지만, 이 바닥에서 구르며 보고, 듣고, 느낀 경험도 무시할 수는 없다. 배용준의 성공 뒤에는 돈 주고는 못 살 경험이 있지 않은가. 실제로 캐스팅과 계약은 물론 마케팅 면에서 웬만한 매니저보다 빠삭한 톱스타들도 많다. 그래서 우리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려 한다.(무비스트)

http://www.movist.com/article/read.asp?type=24&type2=2&id=17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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