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 좋은 사나이라니가!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김영필 특별한만남에대한기록

오늘이 마침 영화 개봉 날이다. 그 동안 많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본인 이름을 건 영화는 처음이라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마음이 편치 않다.(웃음) 부담도 되고,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저예산 영화에 출연한 나도 이런데, 상업영화 관계자들이나 주인공들은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싶어진다. 그래도, 우리가 저예산이긴 해도 잘 돼야지.(웃음) 크게 터질 영화는 아니지만, 입소문이 나서 관객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지금 극단 ‘골목길’ 소속인데, 동료 배우들은 영화를 봤나?
VIP 시사회 때, 극단 단원들이 몇 명 와서 봤다. 동료들이야 일단 아는 사람이 나오니까 재밌어 하는 것 같더라. 어렵다고 얘기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전반적으로 좋다고 해 줘서 다행이다 싶었다.

영화를 보니까, 충무로 조연들보다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연극배우들이 더 많이 출연한 것 같더라. 덕분에 촬영 현장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을 것 같은데, 어땠나.
연극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연극을 잘 안 봐서 많은 배우들을 알지는 못한다.(웃음) 하지만 “저 분은 연극 하시는 선배님이구나” 정도는 알지. 말한 대로 영화 찍으면서 대학로 배우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데 그런 걸 떠나서 배우들이 너무나 훌륭했다. 임순례 감독님이 안목이 좋으신 것 같다. 본인이 그린 인물과 흡사한 배우들을 어떻게 그리 잘 캐스팅하셨는지. 덕분에 연기 하는데 상대 배우 때문에 불편한 건 전혀 없었다.

사람 때문에 힘들지 않았어도, 소 때문에는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웃음)
소 보다는 감독님 때문에 조금?(웃음) 임순례 감독님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거든. 감독님은 배우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를 디테일하게 캐치해 내시는 분이다. 배우를 너무 잘 아는 거지. 하다못해 얼굴이 조금 부은 것까지도 여지없이 잡아내신다.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영필씨, 어제 술 한 잔 하셨냐”고 물어오셨다. “맥주 한 캔 마셨다”고 하면 “우이씨~ 영!필!씨!는! 도와줘야지~”하면서 은근히 압박도 주셨고.(웃음) 그런 식으로 유머가 있으신데, 현장에서는 또, 한 컷 한 컷 놓치는 법 없이 섬세하시다.

이번 영화가 임순례 감독이 차린 영화사의 작품인 걸로 알고 있다.
맞다. 작년에 개봉한 인권영화 <날아라 펭귄>이 첫 번째고, 이번이 두 번째다. 그런데 <날아라 펭귄>은 상영관이 얼마 없어서 극장에서 바로 내려갔다고 하더라. 관객이 2만 명 들었다고 했나? 작품이 좋았다고 들었는데, 그런 작품이 빨리 막을 내려서 아쉽더라. 그런데 이번에도 2만 명밖에 안 들면 어쩌지? 걱정 된다.(웃음)

지겹게 얘기 했을 줄 알지만,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 출연하게 된 사연을 안 들어 볼 수 없을 것 같다.
임순례 감독님이 내가 출연했던 연극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를 보셨나보다. 연극에서 잘 봤는지, 극단 대표(박근형)님을 통해서 연락해 왔다. 나와 통화하고 싶다고. 소식을 전해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바로 전화 드렸는데, “봤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그 때 마침 내가 <너무 놀라지 마라>라는 연극을 하고 있어서, 공연에 초대 했다. 그렇게 만나서 공연 끝난 후 얘기 했는데, “영필씨랑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말씀 하시더라. 그러면서 “투자 문제가 걸려 있어서 확실히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혹시 안 되더라도 내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다른 작품이 있으니까, 마음 편하게 가지고 기다려 달라”고 하셨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투자를 받았다. 함께 하자”는 연락이 왔다.
그 때 기분이 어땠나?
의외로 담담했다. 사실 전에 출연하기로 했다가, 엎어진 영화가 몇 편 있다. 그것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나도 모르게 마음을 비워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영화 주연급 캐스팅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잖나. 특히 나 같은 무명의 경우에는 투자 받기가 더 어렵고. 그런 일을 세 번 정도 겪고 나니까, 어느 순간 감독님들 말씀을 다 믿지 않게 되더라. 마침 임순례 감독님은 (캐스팅이)힘들 수도 있다는 걸, 솔직하게 얘기 해 주셔서 마음을 더 비우고 있었다. 그래서 예전 같으면 엄청 좋아했을 텐데, 그 때는 의외로 담담했던 것 같다.

그 동안 영화 쪽 문을 꾸준히 두드렸나보다.
우리 ‘골목길’ 연극을 영화감독이나 조감독들이 많이 보러 온다. 마니아 감독들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그 분들이 영화 쪽으로 데리고 간 배우도 몇몇 있고.

박해일, 고수희, 윤제문씨가 그런 경우지. ‘골목길’을 좋아하는 대표적인 감독이 봉준호 감독 아닐까 싶다.
맞다. 봉준호 감독님이 대표적이고, 그 외에도 이래저래 소문 듣고 많이들 보러 오신다. 덕분에 소개를 받아서 틈틈이 영화에 쉬지 않고 출연할 수 있었다. 비록 작은 역들이긴 했지만 말이다.

혹시, 연극 하면서 그런 건 없었나? 영화감독들이 자주 오고, 또 많은 ‘골목길’ 배우들을 캐스팅했었기 때문에, 그 분들이 연극 보러 오는 날에는 괜히 의식하게 되는 그런 거 말이다.
아니, 그런 건 없었다. 의식한다고 해서 연기가 더 잘 나오는 것도 아니고. 또 괜히 오버했다간 앙상블만 깨진다(웃음). “저 새끼 감독 왔다고 오버 하네” 그런 소리 듣는 일은 없어야지. 그리고 그게 또 연기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운대가 맞아야 하는 것 같다. 캐릭터나 나이나, 그런 복합적인 것들이 맞아 떨어져야 하는 거지. 사실 임순례 감독님도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 나를 처음부터 염두에 두셨던 건 아니었다. 생각했던 배우가 있었는데 엎어지고, 다른 배우를 찾아봤는데 그게 또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럴 거면 차라리 무명으로 가자!” 해서 나에게 기회가 온 거다. 그러니까 운대가 맞은 거다. 운이 좋았다.

주연 캐스팅이 확정됐을 때, 박근형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던가. 워낙 많은 배우들을 영화판으로 보낸 분이라 느끼시는 바가 달랐을 텐데.
굉장히 좋아하셨다. 자기가 데리고 있는 배우가 좋은 감독을 만나서 좋은 영화에 출연하는 걸 좋아하신다. 그리고 임순례 감독님은 근형 선배가 굉장히 좋아하고 신뢰하는 감독님이다. 그래서 더욱 잘 되길 바래줬던 것 같다. 또 잘 될 거라고 항상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바람 들지 말고, 정신 차리라는 충고도 아끼지 않으셨다.(웃음)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연극으로 치면 부조리극에 가까운 영화다. 여러 가지 메타포가 숨겨져 있고, 그래서 가끔은 난해하기도 하다. 공효진씨도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그냥 멜로드라마 인줄 알았다고 하던데, 당신은 어땠나?
나는 특별히 어렵다는 걸 못 느꼈던 것 같다. 물론 절을 태우고 연꽃이 피는 등의 판타지적이고 쌩뚱맞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냥 방황하는 한 남자의 여행기라고 생각했다. 한 인물이 여행을 떠나서 괴로운 마음을 하나씩 정리하는 스토리 라인은 그렇게 어렵지 않잖나. 그리고 무엇보다 선호라는 인물에게 감정이입이 된 게 극에 몰입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어떤 부분에 감정 이입이 됐다는 건가.
그때 나도 선호처럼 일이 안 풀릴 때였거든. 근형 선배가 “1년 정도 쉬는 게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지쳐있었고, 넋 놓고 연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너무 놀라지 마라> 앙코르 공연이 끝나면 정말 쉬려고 했다. 그 때 마침 임순례 감독님에게 연락이 온 거다. 그러니까 근형 선배가 “얘,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빼려고 했을 때, 임순례 감독님을 만난 거다. 그런데 감독님이 내가 그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을 줄 몰랐나 보다. 너무 상태가 안 좋으니까, 두 달 동안 나를 아주 혹독하게 다루셨다.(웃음)

그 때 뭐가 그렇게 힘들었었나.
그냥 연극 자체가 너무 지겨웠던 것 같다. 극단 소속이라 극단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하는 것도 지쳤고, 연습하면서 공연하는 빡빡한 스케줄도 지쳤고, 여러 가지로 지친 상태였다. 또 지치면 그냥 쉬겠다고 하면 되는데, 내가 약간 수동적이어서 그냥 방치했다. 그렇게 질질 끌려가다보니까 탈이 난 거지. 상대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준 거고. 이번 기회를 통해 배운 게 그거다. 힘들 때는 한 발자국 뒤로 빠지고, 재충전해서 다시 힘을 내는 게 좋다는 걸. 그리고 그런 걸 잘 조절하는 게 중요하겠다는 걸 깨달았다.

선호가 여행을 통해서 자신을 찾는데, 당신도 영화를 하면서 자신을 찾은 셈이네.(웃음)
그렇지. 임순례 감독님과 영화를 하면서 나를 찾은 거지.(웃음) 덕분에 영화 끝나자마자 바로 연극에 들어갔다. 로드무비를 두 달 연속 촬영했으니 지칠 법도 한데, 오히려 영화하면서 충전이 됐다. 풀린 나사가 조여지는 계기가 됐고. 임순례 감독님을 만나건 내게 굉장히 큰 행운이다. 내게 운이 있는 것 같다. 일이 안 풀리다가도, 어느 순간 기회가 ‘탁’ 하고 찾아온다. 그런 걸 보면 운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운이 있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게, 운이 있다고 믿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가?(웃음) 임순례 감독님이 “영필씨에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는데, 어째 시간이 지나니까 슬슬 다시 나사가 풀려 가는 것 같다.(웃음) 촬영 끝난 후, 매일 술 마시고. 몇 개월 안 쉬고 마셨더니, 힘드네. 이제 조금 쉬어야지.

촬영할 때는 술을 안 마셨나?
안 마신 것보다 못 마셨다. 내가 조금만 마셔도 붓는 스타일이고, 부으면 얼굴이 또 확 달라 보이는 스타일이다. 테스트 촬영 날, 감독님이 아마 깜짝 놀라셨을 거다. 전날 술 마시고 테스트 촬영을 가서 얼굴이 부어 있었거든. 또 감독님이 살을 빼달라고 요구를 했었는데, 그것도 못 지켰다. 술 마시고 테스트 촬영 하러 왔지, 요구한 만큼 빼지도 않았지,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었을 거다.(웃음) 결국 이 황당한 녀석을 어떻게 끌고 갈까하다가 선택한 게, 후려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처음 5일을 뺑뺑 돌리는데, 아유~. 한 순간도 쉴 틈을 안주고 살을 쪽 빼 놓더라, 아주.

(웃음)술이 많이 고팠겠다. 영화 할 때.
그래서 이틀 정도 쉬는 날이 있을 때 마셨지. 그러면 부어서 감독님 앞에 나타나고(웃음). 결국 감독님이 “영필씨를 절대 보내면 안 되겠다” 하셨다.(웃음)

공효진씨와의 호흡은 어땠나.
공효진이 상대배우라는 소리를 듣고, “아, 공효진이랑 같이 해? 공효진이라는 배우는 어떨까? 나랑 그림이 맞을까?” 하면서 기대도 되고, 부담도 됐다. 또 처음 만난 날, 감독님이 우리를 보고 무슨 삼촌하고 조카 세워 둔 것 같다고, 그림 참 안 나온다고 걱정하시는 게 아닌가.(웃음) 다행히 영화에서는 삼촌 조카처럼 나오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보통 배우들이 까칠한 면이 없지 않다. 여배우들은 더욱 더 예민하고. 그런데 효진이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사소한 걸로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는데, 그런 군더더기가 없는 배우였다. 덕분에 스트레스 없이 촬영을 할 수 있었지. 또 나는 현장에 계속 남아 있고, 효진이는 서울을 오가면서 촬영했는데, 임순례 감독님만 보다가 효진이가 오면 너무나 즐거웠다.(웃음) 감독이 쥐어짜는 상황에서 상대 배우까지 그랬으면 나는 아마 미쳤을 거다. 그리고 효진이가 나에게 연민을 느껴나 보다. “오빠를 너무 짜는 것 같다”며, 옆에서 케어를 많이 해 줬다.
내 가장 친한 친구 민규와 결혼한 옛 연인(공효진)이 친구의 부고 소식을 알려오는 상황. 실제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나?
나랑 가장 가까웠던 친구랑 내 여자 친구가 결혼한다면, 정말 큰 상처가 될 것 같다.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아마 보고 싶지 않을 거다. 물론 당사자들에게도 사정이 있었을 거다. 그 얘기를 들으면 내 마음도 조금은 달라질 테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게 바로 그 부분이었다. 나중에 민규 동료들이 선호를 몰아세우잖나. “너 때문에 민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고. 선호 편에 서서 민규를 봤던 관객으로선 나름의 충격이다. 선호뿐 아니라, 민규도 그 사랑의 피해자였음을 알게 되는 거지.
맞다. 그런 부분에서 생각할 만한 게 많은 영화다. 사실 처음에는 쌩뚱 맞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많은 의미를 내포한 장면이었지.

연극적인 대사 톤도 없지 않았을 텐데, 그거에 대해서는 어땠나? 감독님이 특별히 케어 한 게 없었나?
그런 건, 없었다. 오히려 감정을 조금 더 표현해 달라고 요구하는 분위기였다. 사실, 영화 오디션을 보러 다닐 때 “영필씨는 대사가 너무 연극적이야”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것도 편견인 것 같다. 내 발성이 연극 안 한 배우보다는 발달된 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튀는 건 아니거든. 얼마 전에 중편 영화를 찍었는데, 그때도 스태프들이 걱정들을 많이 했다. 대사가 너무 연극적일 것 같다고. 그런데 찍어놓고 보니까, 의외로 자연스러웠다고 하더라. 그리고 일단 ‘골목길’ 스타일이 그렇게 연극적인 대사 톤을 추구하지 않는다. 근형 선배도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하고. 물론 어느 부분에서는 그런 게 필요하지만, 그런 거에 박혀 있는 걸 싫어하신다. 그런 부분들이 영화 할 때 도움이 된다.

그러고 보니, ‘골목길’ 출신 배우들에게서 특별히 ‘연극적이다’라는 이질감은 없었더 것 같다.
다들 잘 적응 했지. (윤)제문이형이나 (고)수희도 개성이 강하지, 대사가 연극적이고 그런 건 아니니까. 그런데 조금 위 선배들만 해도 대사 투 때문에 굉장히 고생을 했다고 하더라. 물론 어떤 선배들은 그걸 또 자기화시켜서 멋지게 해낸다. 그런 선배들도 정말 멋있지. 예를 들어 송강호 선배님 같은 경우는 사투리를 그냥 내뱉잖나. 연극할 때, 사투리 때문에 구박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는데, 그걸 자기의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정말 대단한 거지. 송강호 선배는 새로운 역사를 쓴 분이지.(웃음)

최근 당신을 송새벽, 박희순과 함께 언급하는 기사들이 많이 보이더라. ‘연극 무대 출신 유망주’ 이런 식으로. 혹시 봤나?
봤다. 사실 내 기사 검색을 하는 편이다. 궁금해서.(웃음) 어제 그 기사를 봤는데, 그 어떤 기사보다 반갑더라.(웃음) 그렇게 봐주시는 게 너무 고맙고. 송새벽씨는 아주 가깝지는 않지만, 여러 번 만난 사이다. 6-7년 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처음 연극 하는 걸 보고 “저 친구는 잘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정말 일이 잘 풀리고 있더라. 나도 연극을 오래 하다 보니, 배우 보는 눈은 생기는 것 같다. 박희순 선배는 연극판에서는 본 적이 없고, <가족>이라는 영화를 통해 TV에서 우연히 봤다. 그 때 건달 역이었지? 와, 정말 기가 막히게 잘 하더라. 잘 한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직접 보니까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알겠더라.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당신을 인상적으로 본 영화도 떠오른다. <강철중: 공공의 적 1-1>에 나왔을 때, 머리가 ‘올백’이었나? 보면서 놀랐던 기억이 나는데.
2:8이었다. 그 많은 것 중에 왜 하필 2:8이었는지, 참. 다시는 안 할 거다, 2:8은!(웃음) <강철중: 공공의 적 1-1>이 그나마 비중 있게 출연한 영화다. 원래 5-6회 차 밖에 촬영씬이 없었는데, 감독님이 좋아해 주셔서 분량이 중간에 조금 늘어났다. 마지막에 설경구 선배랑 차 안에 함께 있는 씬도 원래는 없던 거였는데, 강우석 감독님이 걸어주셨다. 너무 고마웠지.

연극과 달리 영화 현장은 철저하게 주인공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이번 영화를 통해 중심에 선 셈인데, 그런 게 부담인 동시에 은근 자부심도 됐을 것 같다.
그런 걸 느낄 겨를이 없었다. 정말 “오늘 하루를 버티자!”로 지냈다. 감독님이 좋았던 게, 힘들 때쯤에 문자를 보내오셨다. “영필씨 지금 많이 힘들죠?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 조금만 더 기운 내” 이런 식으로. 현장에서와는 완전 다른 모습인 거지. 그 마음 씀씀이를 보면서 “아, 저 사람은 뭔가 다르구나”를 느꼈다. 정말 멋진 분이시다.
조금 과거로 돌아가 보자. 연극은 어떻게 시작했나?
대전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연극을 처음 시작했다. 대학에 가서는 연극반 활동도 했고. 스물여덟에 서울 올라와서 학교를 조금 다니다가, 근형 선배를 만나서 여기까지 왔다. 근형 선배를 만난 서른한 살부터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연극을 한 거다.

서울 올라올 때 어떤 마음이었나? 20대 후반에 올라왔다는 건, 당시 뭔가 큰 결심을 했다는 유추를 하게 하는데.
당시에도 연극을 하고 있었는데, 굉장히 답답했다. 뭔가 탈출구가 필요한 시기였다. 뭔가 정체돼 있는 것 같고, 우물 안에 갇혀 지내고 있는 느낌이랄까.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은 욕심에 서울로 올라왔다. 그 때, 친척이 의정부에 있어서 그 쪽에서 잠시 머물다가, 나중에 혼자 자취하고 그러면서 지냈다.

아까 서울 올라와서 학교를 조금 다녔다고 했는데 그건 무슨 얘긴가?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은 했는데, 졸업을 못 했다. 학점이 모자라서.(웃음)

아깝지 않나?
에이~ 뭐, 아깝고 그런 건 없다.

대전에서는 법학과를 다닌 걸로 알고 있다.
거기도 조금 다니다가 나왔다(웃음). 내가 중간에 많이 때려 치는 스타일이다. 연극도 중간에 종종 도망 다녔고.(웃음) 어디로 도망갔냐고? 그냥 가까운 사람들과 술 마시며 내가 도망가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막 설명하고 그랬다.(웃음).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드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다 싶어진다. 이젠 그러면 안 쓰더라고.(웃음) 점점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다.

선호는 과거에 얽매여있는 인물인데, 당신은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인물 같다.(웃음) 서울에 왔다가, 중간에 다시 대전으로 내려갔었다. 그것도 도피의 일종이었나?
서른 한 살 때였을 거다. “아르바이트하러 보름만 내려갔다 올게요” 한 게, 1년 2개월이나 머물게 됐다.

그 때도 많이 힘든 시기였나 보다.
그랬다. 얼마 전에 상태가 안 좋았던 건 지쳐있었던 것일 뿐이고, 그때는 정말 힘들었었다. 일도 없고, 앞날도 막연하고. 나이 서른이 넘으니까 사람과 섞인다는 것도 쉽지 않더라. 또 경제적으로도 힘들었다. 내가 영화하면서 빈둥거리기만 했지, 아르바이트를 거의 안 했었다. 그래서 “돈 좀 벌어야겠다”고 해서 잠시 내려간 건데, 어떻게 하다 보니 길어졌다. 그런데 거기 가서 또 연극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극을 하게 되더라. 슬슬 무료함도 느끼고. 그때 답이 나왔다. “다시는 대전에서 연극 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이 확고하게 든 거다. 그렇게 접고 올라왔는데, 근형 선배님이 다시 받아주셨고, 바로 무대에 서게 됐다. 그 때도 운이 좋았다. 원래 스태프였는데, <청춘예찬> 주연 배우가 영화 스케줄로 보름정도 빠지면서 내가 그 역을 대신하게 됐다. 그 때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청춘예찬>은 박해일씨를 배출한 연극으로도 유명한데, 당신에겐 제2의 박해일이라는 수식어가 있다.
조금 닮았나 보다. 영화 촬영장 가면 비슷하다고 대접을 잘 해 주신다.(웃음) 그런 수식어를 들으면 반반이다. “지겹네, 그 놈의 박해일!”이러는 거 반.(웃음) 덕분에 내가 더 알려지니 고마운 거 반. 어떻게 해야 이미지가 달라 보일까, 하는 생각은 많이 한다.

지금까지 많은 연극에서 많은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캐릭터를 꼽자면?
<너무 놀라지 마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일단 작품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캐릭터에 매력이 있었다. 내가 애를 써야 하는 인물이 있다면, 이 인물은 넋 놓고 있어도 확 빠질 수 있는 인물이었다. 이젠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청춘예찬>과 함께 우리 극단의 대표 레퍼토리가 됐지. 세 작품 모두 동아 연극상 수상작인데, 말했듯이 내가 정말 운이 좋다. 배우가 이런 좋은 작품을 만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나. 그런데 세 개씩이나 만났으니,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영화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는 건가.
들어오면 당연히 해야지. 아쉬운 건, 오디션이라는 짧은 시간으로는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없다는 거다. 그런 면에서 임순례 감독님이나 봉준호 감독님이 좋은 게, 연극을 보고 캐스팅 하시잖나. 배우에게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시는 거지. 그런 분들하고 작업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
잘 하는 배우. 배우가 살아남는 길은, 잘 하는 것밖에 없다고 본다. 그거 말고는 어필할 게 없잖나. 매 순간 열심히 잘 해야 한다. 특히 스크린 같은 경우는 기록이란 게 남는다. 그 동안 내가 영화를 8-9작품 정도 했는데, 지금 보면 사실 부끄럽고 그렇다. 그걸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고 했으니까. 그런데 이번 영화를 통해 준비과정, 촬영과정, 여러 우여곡절들을 보면서 많은 걸 느꼈다. 아마, 단역 배우들은 그런 걸 잘 모를 거다. 어떻게 알겠나. 경험 할 기회가 없는데. 나는 운이 좋아서 이렇게 볼 수 있었는데, 감독이나 주조연 배우들이 자신을 걸듯, 나도 절실하게 연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에 그러지 못했던 게 많이 아쉽기는 하지만 늦지 않았다고 본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나에게 참 여러 가지를 가르쳐 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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