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레거시> 뼈가 퇴화했다 심야영화티켓

본이 없는 <본> 시리즈가 가능할까. 적어도 유니버설픽처스는 가능하리라 믿었다. 왜 안 그렇겠나. 돈이 되는 건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곳이 할리우드다. 무려 9억 3,00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안긴 <본> 시리즈는 그냥 끝맺기에 너무 아쉬운 프로젝트였다. 문제는 시리즈의 아이덴티티나 다름없는 맷 데이먼이 떠났다는 것이었고, 따라서 관건은 그의 공백을 매워줄 배우를 찾는 일이었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하차로 인한 손실 역시 막아야했다. 여러 우려 속에서 심폐소생술사로 낙점된 건 제레미 레너, 사령탑 자리엔 이전 삼부작에서 각본을 맡은 토니 길로이가 앉았다.

그렇다면 질문은 토니 길로이에게 넘어간다. 본 없는 <본> 시리즈를 어떻게 구상할까. 토니 길로이가 <본> 시리즈를 끌어안는 방법은 <볼 얼티메이텀>의 시간대로 <본 레거시>를 가지고 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제이슨 본(맷 데이먼)이 뉴욕 어딘가에서 트래드스톤의 비밀을 폭로하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국 국방부 산하에는 CIA 암살단 트래드스톤만 있는 게 아니었다. 특수 약물 처방과 함께 전투력을 상승시켜온 극비팀 ‘아웃컴’도 있었다. 트래드스톤 최정예 요원이 제이슨 본이라면, 아웃컴 최고 요원은 바로 이 남자 애론 크로스(제레미 레너)가 분명하다. 제이슨 본에 의해 정부의 암살 프로젝트가 공개될 위기에 처하자 프로그램 책임자 바이어(에드워드 노튼)는 아웃컴과 관련된 모든 인물들을 제거하려 한다. 아웃컴 요원들이 하나 둘 살해되는 가운데, 애론은 가까스로 살아남아 정부와 사투를 벌인다.

<본 레거시>가 취하는 스토리는 기존 <본> 시리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기관에 의해 인간 병기로 키워진 비밀 요원이 국가에게 버림받은 후 외롭게 맞서는 이야기. 그러나 토니 길로이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향은 사뭇 다르다.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했던 고독한 본과 달리, 애론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적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본> 특유의 주제의식은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무뎌졌다. 외부의 적과 싸우는 애론은 자신과의 사투에 집중했던 본에 비하면 무게감도 개성도 뒤쳐진다. 실존주의적인 첩보영화가 <본 레거시>에 다다라 일반 오락영화로 변모한 느낌이다. 자신의 신체적 능력을 키워줄 ‘약’을 찾아 떠나는 애론 크로스는 제이슨 본보다 오히려 <007>의 제임스 본드에 더 가깝다. 첨단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사건을 파헤치던 그 제임스 본드 말이다. 게다가 애론 곁에는 그를 돕는 마르타 셰어링(레이첼 와이즈) 박사가 있다. 극적인 순간 본드 걸의 역할을 자처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면, ‘세상에’란 탄식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패착은 다른 곳에 있다. <본> 시리즈에 너무 얽매여 있다는 게 <본 레거시>의 함정이다. 토니 길로이는 본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너무 많은 본의 그림자를 드리움으로써 본에게 오히려 잡아 먹혀버리는 불상사를 낳는다. 영화는 이전 시리즈에 등장했던 화면들을 적지 않게 소환한다. 인물들의 대화에 제이슨 본을 끊임없이 언급하기도 한다. 너무 잦은 플래시백과 본에 대한 언급은 극의 흐름을 저해할 뿐 아니라 극의 이해에도 혼란을 야기 시킨다. 이러한 선택은 <본 얼티메이텀>을 보지 않은 관객들에게 특히나 쥐약이다. 영화에 편입하지 못한 채 상황 파악에 많은 시간을 빼앗길 공산이 크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주인공 제레미 레너가 차별받는 것도 문제다. 중반까지 맷 데이먼의 흔적을 쫓느라 제레미 레너는 중반 이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실력을 뽐낸다. 본을 지키려다 결국 애론마저 놓치는 인상이다. 배우들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감정의 밀도가 약한 것도 본의 그림자를 지나치게 의식한데에서 오는 오류다. 과거 서사 전달에 주력하는 대화는 지루하기 그지없다.

액션은 좋다. 마닐라 도심지 추적씬에서 이전 <본> 시리즈에서 경험했던 리듬감 넘치는 액션이 감지된다. 몸과 몸이 맞부딪치는 액션에서 오는 쾌감은 <본> 시리즈의 무술 감독 댄 브래들리의 능력에 크게 빚지고 있다. 다만 브래들리의 입김이 개입한 분량이 너무 적은 것은 유감이다. 액션을 봉합하는 방법도 뭔가 미덥지 못하다. 영화는 애론을 막기 위해 조금 더 진화한 살인병기를 내 보내는데, 이것이 마치 터미네이터(아놀드 스왈츠네거)를 해치우기 위해 그보다 더 진화한 인조인간을 보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본 레거시>에서 <터미네이터>의 유산(Legacy 레거시)을 만날 줄은 미처 몰랐다. 우리가 <본 레거시>에게 기대한 유산은 <터미네이터>의 유산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무비스트)


덧글

  • 잠본이 2012/09/10 23:40 # 답글

    거기에 더하여 그 터미네이터를 처치하는 방법도 영 뜬금없었죠.
    마르타 그녀는 좋은 발길질 선수였습니다...으잉?
  • 루시드레인 2012/09/11 10:43 #

    발길질의 순간 마르타의 과거가 의심됐어요. 알고 봤더니, 국가에 의해 길러진 여성요원...(?) 이쯤 되면 자신의 정체성에 의심을 품어야 하지 않을까 싶더군요. 제이슨 본처럼. 흐흐
  • 유머나라 2012/09/11 00:24 # 삭제 답글

    품질 떨어지는 본 시리즈였어요.
    마지막 악당의 비장의 무기가 왜 그리 부실한지..
  • 루시드레인 2012/09/11 10:43 #

    비장의 무기가 여러 사람을 웃기고 말다니..
  • 2012/09/12 03:3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9/13 09:0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하모니 2012/09/15 19:21 # 삭제 답글

    주인공이 수다맨인게 1차 패인..
    기존 본시리즈는 설정에 대한 특별한 설명없이
    본이 혼자 치고박고 하는 건데..
    그래도 관객들이 다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본 레거시는
    왜이리 설정에 대해 수다스런 설명이 많은지...

    또한 에드워드 노튼은 그냥 안보만 외치는 스테레오타입의 음모형 악당이어서
    아무런 매력을 느낄수 없었고..

    마지막 카액션은 ㅎㄷㄷ
    터미네이터를 홍콩식 쌈마이 액션물로 뒤범먹한 느낌이었음..

    그래도..
    워낙 재미없다는 말에
    기대치 많이~ 낮추어 보니
    시간은 잘 가더이다.
    킬링타임용으로는 괜춘한 수준...
    그러나 본시리즈의 명성을 있기에는 매우 역부족...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