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상은 <광해>의 ‘지능적 안티’인가! 극장전劇場前

혹자는 ‘광해의 난’이라 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의 대종상 15개 부문 독식. 한마디로 민망했다. 밋밋했다. 긴장감도 없었다. TV로 시상식을 지켜보는 시청자도, 현장에 있는 영화인들도, 심지어 상을 받는 이들도 민망해하긴 매한가지였다. “<광해>!” “또 <광해>예요!” “정말, <광해>의 날이군요” 사회를 맡은 신현준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광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시상자로 나선 원로배우 거룡은 “속된 말로 <광해> 싹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속되거나 말거나, ‘싹쓸이’는 제49회 대종상영화제를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인 단어다. <광해> 제작사 대표의 최우수작품상 수상소감 첫 마디 조차 “기쁘기는 하지만 이 자리에 함께 한 영화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였을 정도니, 말 다 했다.

어떻게 보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대종상 ‘흑역사’를 들춰보면 그러하다. 70~80년대 충무로에는 외화수입을 제한하는 외화수입쿼터제가 있었다. 국내영화보다 외화가 더 돈이 됐던 그 시절, 외화를 수입할 수 있는 쿼터를 따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제작하거나, 영화제에서 상을 타거나. 쿼터를 받기 위한 수입사/제작사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대종상 입맛에 맞춘 영화들이 양산되기 시작한 게 바로 이때, 대종상을 둘러싼 로비 의혹이 불거진 것도 이때부터다.

대중의 뇌에 깊이 각인된 건, <애니 깽>사태다. 1996년 대종상은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 <애니 깽>에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몰아주며 추문의 대상이 됐다. 2000년에는 한 신인 배우가 뒷돈을 대고 대종상 신인상을 챙겼다. 권위는 타락하고, 공정성을 설 자리를 잃었다. <해운대> <내 사랑 내 결에>의 하지원 대신 장나라가 미개봉작 <하늘과 바다>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등극했던 지난 2009년에도 논란은 가문의 저주처럼 대종상을 떠나지 않았다.  

올해 대종상이 내건 슬로건은 ‘하나가 되는 영화제’였다. 시도는 좋았다. 하지만 정작 분위기는 남북휴전선마냥 ‘<광해> VS <광해> 아닌 영화들’로 양분됐다. 시상식 장에 흐르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주최측이라고 모를 리 없다. 시상 도중 김기덕 심사위원장(<피에타> 김기덕 감독과 동명이인)은 “특정 작품에 수상이 쏠리는 것에 오해가 있을 것 같다. 기존에는 모든 후보작들을 실사한 후 비교 평가했으나 올해는 한 작품 실사가 끝날 때마나 평점을 기입해서 봉합하고 은행 금고에 넣어두었다. 심사위원장인 저조차 이런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해명까지 하고 나섰다. 김기덕 심시위원장의 말이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뺨맞을 걸 알면서 이런 결과를 선택했을리 없다. 설마! 에이, 설마! 하지만 주최측이 간과한 게 있다. 투명성이라는 게 과연, 금고를 동원했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일까. 대중이 원하는 투명성은 심사기준의 투명성일 것이다.

<광해>가 상 받을 자격이 없는 영화라는 소리는 아니다. <광해>의 독식이 치명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분배를 했다면, ‘나눠먹기’라는 비판이 제기됐을 게다) 다만 영화를 바라보는 대종상의 안목과 취향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구린 뒷맛이 남는다는 게, 함정이다. 필자는 <광해>가 받은 15개의 상 중, 일부는 대종상의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선택이라 생각한다. <광해>의 천만관객 기록 뒤엔 할리우드 영화 <데이브> 표절 논란이 있었다. 그런 영화가 시나리오상과 기획상을 받았다. <광해>를 <데이브>와 비교하며 의문을 제기했던 대중은 순식간에 의심쟁이가 돼 버렸다. 류승룡의 남우조연상 수상도 기꺼이 환영한다. 다만, 어쩌면 그는 <광해>보다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상을 받는 게 더 그럴싸해 보였을 수 있다. 시각 차이는 있겠으나, 류승룡의 배우적 가치를 발견해 준 건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장성기라 생각하니까.

물론, 가장 큰 피해는 <광해>일지 모른다. 실제로도 그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러니까 <광해>로서는 가만히 있다가 논란의 주역이 된 셈이다. 담임이 티 나게 편애하는 바람에 왕따 당하는 꼴이다. 부모가 대기업 간부(CJ엔터테인먼트)라는 사실 때문에 미운 털 박힌 격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대종상이 <광해>의 ‘지능적 안티’가 돼 버렸다. 먼 훗날 제49회 대종상영화제를 영화로 만든다면, 엔딩 크리딧은 다음과 같지 않을까. 제목-<광해> 밖에 난 몰라, 제작/감독/각본-대종상영화제조직위원회, 주연-<광해>와 CJ 엔터테인먼트, 조·단역-최민식 안성기 황정민 임수정 이하 충무로 영화인들. 아, 시상식 도중 말없이 퇴장한 <피에타>의 김기덕 감독은 특별출연쯤 되려나. (무비스트)


덧글

  • 이요 2012/11/01 10:46 # 답글

    저희도 대종상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건 아무리 봐도 고도의 '광해' 안티다 라고.
  • 루시드레인 2012/11/02 11:24 #

    <광해>측도 정말 당황스러웠을 거예요. ^^;;
  • Megane 2012/11/01 15:48 # 답글

    충무로를 지날 일이 종종 생기는데요... 대종상... 그냥 폐지해라.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진짜 그들만의 리그...
    투자자와 배급사들만의 잔치. 이렇게 저질스러운 행사가 무슨 권위가 있다고...
  • 루시드레인 2012/11/02 11:25 #

    심사제도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한데,
    제대로 된 방법을 못 찾고 우왕좌왕하는 것 같아요.
  • 무명병사 2012/11/01 16:22 # 답글

    막말로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 영화가 돈 잘 벌고 입소문 잘 타서 탄 거 아닌가>하고 말이죠.
    아카데미 영화제도 까임대상이 된다죠? 비슷한 이유로(...)
  • 루시드레인 2012/11/02 11:28 #

    심사위원이 누구인가가, 그래서 중요한 거죠. ㅜㅜ
  • jksoulfilm 2012/11/01 22:21 # 삭제 답글

    정시우 기자님 글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 루시드레인 2012/11/02 11:27 #

    감사합니다.
    jksoulfilm님 홈피를 찾아가 보니, 읽을 것들이 많네요.
    저도 자주 들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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