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보통의 연애’가 아닌, 연애 심야영화티켓

한마디로 흥미롭다! 이건 잘 만들어진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읊조리게 되는 말들, 그러니까 ‘설렌다’거나 ‘달달하다’거나 ‘감성적이다’ 류의 느낌과는 다르다. 데이비드 O. 러셀은 아직 로맨틱 장르가 담아내지 않은 기상천외한 연애담들이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쓰레기통 비닐을 뒤집어쓰고 달리는 이 남자, 팻(브래들리 쿠퍼)을 보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 <행오버>인 줄 잠시 착각했다. 술에 취해 지상 최고의 주사를 보여줬던 <행오버>의 필(브래들리 쿠퍼)이 생각나서 말이다. 하지만 술만 피하면 무탈한 필과 달리, 팻은 평상시에도 조울증과 과대망상을 오고간다.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멜로영화 남자주인공 치고는 심하게 민폐캐릭터인 팻에게 놀라게 되는 것보다 더 눈을 의심케 하는 건, 영화가 팻을 능가하는 더 막강한 여자 캐릭터를 숨겨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한참 후에야 등장하는 티파니(제니퍼 로렌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회사동료 모두와 무분별한 섹스를 즐긴 죄로 백수신세가 된 불안한 정신의 소유자다. 첫 만남에서부터 자신들이 복용해 온 정신질환 약을 스스럼없이 까발리는 이들의 모습은 해괴하기 그지없다.

과대망상증 남자와 섹스중독자 여자가 만나서 함께 밥 먹고, 얘기 나누고, 급기야 댄스 경연대회 파트너로까지 인연을 이어가게 된 배경 뒤에는, ‘상처’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아내의 외도 장면을 목격한 후 ‘돌아이’가 된 남자와 남편을 사고로 잃은 후 마음 둘 곳을 잃은 ‘돌아이’ 여자는 배우자에 대한 각기 다른 상처를 안고 있다. 이 영화가 재미있는 건, 비슷한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아픔을 보듬기는커녕 후벼 파는 노선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의 약점을 쥐고 으르렁 거리는 모습이 골 때리는 재미를 선사한다.

이 영화에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식의 사랑교본 따위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남녀 특유의 연애습성을 고찰한다거나, ‘밀고 당기기’ 식 심리극도 이 영화에는 없다. 첫 만남에서 다짜고짜 “침대로 함께 가자”고 제안하는 쪽도 여자이고, 싫다는 남자에게 끈덕지게 달라붙는 것도 여자다. 그런 상황에서 남자는 접근금지명령인 아내와의 재결합에만 몰두한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두 남녀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정신상태 역시 그리 건강할 게 못된다는데, 이 영화의 두 번째 매력 포인트가 있다. 미식축구에 대한 각종 징크스를 지닌 스포츠 도박꾼인 팻의 아버지(로버트 드니로)나, 팻의 정신병원 룸메이트 친구 대니나, 겉으로 보이는 물질적 행복에 집착하는 티파니의 언니나 어째 모두 나사 하나 풀린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남녀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에로스적 감정을 길러내는 여타의 로맨틱 코미디와 달리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극단적으로 설정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을 한데 엮어 사랑의 범주를 가정 안으로까지 확대시킨다. 다소 안일하게 풀리는 결말이 아쉽긴 하지만, 이 정도면 소소한 일상까지 파고든 수준 높은 드라마임에 틀림없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멜로영화는 주인공하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기도 한다. 특히 상황을 불문하고, 두 손가락을 치켜들어 “XX”를 외치고야 마는 제니퍼 로렌스의 매력에 취하지 않기란 힘든 일이다. 미국 언론들이 제니퍼 로렌스를 유력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로 점치는 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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