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다크 서티> 이토록 생생한 현장감 심야영화티켓

제작 단계에서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을 그린다는 점에서부터 논란을 예고한 영화는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CIA가 기밀문서를 제작팀에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애초 지난해 10월 개봉 예정이었으나, 대선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개봉일도 연기됐다. 개봉 후에는 ‘고문 논란’이 불거졌다. 논란의 중심에서 <제로 다크 서티>를 이끈 이는 <허트 로커>로 여성 첫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캐서린 비글로우다. 아카데미는 이번에도 비글로우를 시상식에 초대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영화는 음향편집상 한 개 부문 수상에 그쳤다. 일각에서는 보수적인 아카데미가 정치권과 마찰을 일으키기 싫어서 <제로 다크 서티>를 외면했다는 음모설을 내놓기도 했는데, 필자도 이러한 추측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현장의 긴장감을 생생하게 퍼 나르는 <제로 다크 서티>는, ‘정치적 논란’에 함몰돼 외면받기엔 억울한 작품이다. 

2001년 9월 11일. 항공기 한 대가 뉴욕 세계무역센터로 돌진했다. 그 날, 미국의 자존심은 무너졌다. 그러부터 10년. 2011년 5월 1일, 자정에서 30분이 지난 시간. 미국 네이비씰 대원들을 실은 헬리콥터가 파키스탄 항공을 날아 빈라덴의 은신처에 도착했다. 몇 시간 후 오바마 대통령은 “9ㆍ11의 원흉 빈라덴이 네이비씰에 의해 사살됐다”며 “정의가 실현됐다”고 발표했다. 2001년 세계무역센터에서 걸려온 통화 속 실제 음성들에서 시작되는 <제로 다크 서티>는 빈라덴이 2011년 파키스탄의 한 민가에서 발견, 피살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그 중심엔 빈라덴 검거에 10년의 세월을 바친 CIA요원 마야(제시카 차스타인)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CIA에 입사한 마야의 빈라덴과의 ‘악연/인연’은 그녀가 파키스탄으로 파견되면서 시작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빈라덴 검거에 혈안이 돼 가는 마야는 은행 강도질을 즐거운 놀이로 즐기는 <폭퐁 속으로>의 보디(패트릭 스웨이지)와 폭발물 제거라는 위험한 상황에 중독된 <허트 로커> 속 제임스(제레미 레너)의 또 다른 얼굴, 그러니까 캐서린 비글로우가 낳은 또 한명의 분신이다.

마야가 빈라덴에 집착하는 건 투철한 애국심 때문도, 국가의 강요 때문도, 정치적 목적 때문도 아니다. 다만 그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이기 때문이다. 동료를 잃고, 폭탄테러에 휘말리고, 총격에 목숨을 위협당하고, 자신의 얼굴이 테러범들에게 노출되는 위험한 일을 겪으며 마야는 지쳐가지만 동시에 대상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힌다. 전쟁을 대하는 비글로의 시선은 여전하다. 어줍잖은 교훈이나 의식적인 선동을 지양하면서 사건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 피상적인 휴머니즘을 설파하기 보다는, 한 인간의 심리에 집중하는 것. 그렇게 비글로우 감독은 정치적 관점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흘러간 부조리의 시간들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제로 다크 서티>는 전작 <허트 로커>가 그랬듯, 화끈한 액션보다 스릴에 무게 중심을 둔 영화다. 이러한 스릴감을 소름 쭈뼛 돋게 표현해 낸 대표적인 시퀀스는 마야의 동료가 돈으로 매수(했다고 믿는)한 알 카에다 측 정보원과 현장 교섭하는 부분이다. ‘작전 성공에 대한 기대’와 ‘이 거래가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믿음’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관객은 무언가 살벌한 사태가 벌어질 것 같은 예감에 빠져든다. 그리고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르는 서스펜스는 정보원이라 믿었던 상대(테러범)의 몸에서 주렁주렁 매달린 폭탄물이 발견되는 순간, ‘아’ 하는 탄성과 함께 폭발한다.

빈라덴의 은신처를 네이비씰 요원들이 기습하는 마지막 30분, ‘제로 다크 서티’의 시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야간투시경을 쓴 군인들의 시각으로 보여 지는 이 시퀀스에서 비글로우 감독은 조명과 사운드 등 인위적인 테크닉을 최대한 배재함으로써 현장에 실제로 와 있는 듯한 생생함을 전달한다. 보이지 않는 적들로 인한 폐소공포의 상황에 놓인 군인들을 통해 관객은 전장의 공포를 간접체험할 기회도 얻는다. 그래서 임무를 성공리에 마무리하고도 허무한 감정에 빠지는 군인들과 마야의 심정을 관객은 그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린다. 비글로우는 작전이 끝난 후 환호하는 마야의 ‘웃음’이 아닌, 허망한 표정을 한 마야의 ‘눈물’로 에필로그를 대신한다. 전쟁이 남긴 허무주의. 10년을 매달린 일을 끝마친 이의 허탈함. 자신이 전쟁이라는 마약에 중독됐음을 깨닫고 다시 위험천만한 킬 존으로 돌아가는 <허트 로커>의 제임스와 달리, 마야는 돌아 갈 목표 자체를 잃었다. 그 공허함은 과연 누가 채워줄 수 있을까. 빈라덴 사망 이후에도 끝나지 않은 비극 앞에 마야의 열정은 위태롭게 위협받는다.


덧글

  • shaind 2013/03/11 15:08 # 답글

    원래는 빈라덴이 종적을 감추는 결말로 각본이 써졌는데, 만드는 사이에 빈 라덴이 죽어버려서 결말이 바뀌었습니다. 넵튠 스피어 작전 참가자의 수기가 나왔던 건 덤
  • 루시드레인 2013/03/14 10:21 #

    네. 비글로우 입장에서는 영화를 찍기 전에 사건이 터져서 다행이었을 거예요. 작전 실패한 영화를 내 놓았는데, 현실에서는 성공했으면 그만큼 맥빠지는 영화가 없잖아요.
  • 옥신이 2013/03/11 16:05 # 답글

    의외로 제가 봤던 극장에서의 사람들 반응은 썩 좋지 않았는데, 저는 그 마야가 마지막부분에서 눈물 떨구는 모습에서 울컥해버렸습니다.
  • 루시드레인 2013/03/14 10:22 #

    이 영화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뉘는 것 같아요.
  • deepthroat 2013/03/11 17:00 # 답글

    다만 역시 다 스포일러(...)라 중간중간의 이벤트들 결과를 다 알고 봐서 '터질건데 뭐..'...라는 느낌으로 봐서; 아쉬웠달가; 아무튼 캐서린 비글로우 누님이 감독을 해서 정말 다행인 10년의 회자정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 루시드레인 2013/03/14 10:23 #

    10년의 회자정리라는 말이 딱 맞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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